윌리엄 터너와 드뷔시
인상이란,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것임에도 가장 정확하게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것. 대상이 그림이라 한다면 붓의 터치, 색감, 작가의 사물 표현력 등으로 드러나는 것. 그래서 나는 인상주의 작가의 작품을 볼 때 가장 그 대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는 1995년 영국 BBC라디오에서 '영국이 소장하고 있는 가장 위대한 그림 1위'로 선정되었다. '풍경화의 셰익스피어'로도 불리는 이 영국 화가는 영국인들을 비롯하여 예술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영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갤러리인 테이트 브리튼에서는 터너에게 기증받은 1만9000점과 스케치북 200여권을 전시하기 위해 그를 위한 전시실을 11개나 두었을 만큼 터너와 그의 작품들은 영국인들에게 각별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작년 2월, 영국 20파운드에는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뒤이어 윌리엄 터너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고.)
‘윌리엄 터너'라는 이름은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의 '이 작품' 에 매료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벌써 4년 전, 영국으로 10개월간 교환학생을 떠났을 때, 나는 테이트 브리튼에서 그의 작품을 실제로 마주했다.
이 작품은 터너가 죽기 6년 전 완성한 작품으로, 이전에 보여준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센 풍랑의 바다와 완전히 대비되어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이전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강렬하고 어두운 색들은 그림 속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자욱한 안개와 그 뒤에 흐리게 칠해진 노란빛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제목으로 보아 그림에 형체를 알 수없는 회색빛이 감도는 건물은 노엄 성이고 시간대는 해가 뜨는 새벽녘 혹은 이른 아침인 듯 하다.
그는 프랑스의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과 클로드 로랭의 그림에 매료되어 약 500여점의 스케치를 그렸고 그만의 낭만주의적 화풍을 발전시켰다. 이후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적인 그림체를 띄기 시작했고, <노엄 성의 일출>또한 그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다. 사실 터너는 낭만주의시대 화가로 인상주의 이전시대 사람이지만 그의 인생 후기 작품들에서 인상주의 사조의 특징들이 보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이런 이유로 터너를 인상주의의 시작의 문을 연 화가로서 모네, 르누아르의 예술세계에 영감을 주었다고 본다. 터너의 명성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로 당대 최고의 비평가 겸 사회사상가였던 존 러스킨의 찬사를 들 수 있다. 그는 터너에 대해
색채를 이성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고
마치 시력을 되찾은 소경처럼
빛과 자연을 가장 순수한 감각으로
인식하고자 한 화가
라고 할 만큼 터너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팬이기도 했다. 일년 중 절반 이상이 비가 오는 습한 날씨인 영국. 그렇기에 영국인들에게 먹구름이 개인 화창한 날씨는 매우 특별하다. 화폭에 담긴 요소들의 실루엣들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될 수 없는 모호성을 지님과 동시에 편안함을 준다.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인상을 남기는 그의 그림들로 보건데, 그는 낭만주의 화가이자 인상주의 화가임이 분명하다.
대학생이 된 지 1년이 채 안되었을 무렵 현대음악 교양을 들었던 적이 있다. 교수님께서는 음악회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셨고 처음으로 직접 예매를 해서 음악 연주회에 갔다. 자세하진 않지만 연주회는 총 5곡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현대 음악 3곡에 뒤 이은 2곡은 연주자가 좋아하는 곡. 2곡 중 드뷔시의 달빛이 있었다. 연주회에서 처음 듣고 알게된 이 곡의 선율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마치 검은 하늘에 환하게 빛나는 달빛과 별들의 반짝임을 음표들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윌리엄 터너가 인생 후반에 남긴 인상주의적인 풍경화들을 하나씩 감상하면서 문득 드뷔시의 달빛이 떠올랐다. 특히 노엄 성의 일출을 감상할 때는 곡과 그림은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비록 달빛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곡이었지만 그 신비로움과 평온함이 닮아있었다. 우연이라고 해야하는 것일까. 알고보니 드뷔시 또한 대표적인 인상주의 음악가 중 한 명이었다. 비록 음악과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묘하게 닮아있었고 비슷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인상주의 예술은 뚜렷하거나 정확하진 않지만 자극적이다. 균형잡히진 않았지만 부드럽다. 통일성있진 않지만 색채적이다.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특정한 장면이 어떻게 보이는지
보여주기 위해 그린다.
*원문: I don't paint so that people will understand me. I paint to show what a particular scene looks like.
*더 많은 터너의 작품은 테이트 브리튼 웹사이트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풍은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어떤 점이 당신을 기분 좋게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