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카페 카푸치노와 보은
당신은 기분이 좋을 때 혹은 좋아지고 싶을 때 어디로 가는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나의 경우에는 집 뒤에 있는 작은 카페에 간다.
집 뒤에 작은 카페가 있다. 큰 빌딩 옆 자그마하게 나무로 세워진 건물의 외관은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에 눈길을 끄는 곳. 그래서 카페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단번에 잘 기억할 수 있었다. 그날의 입맛에 따라 주문하는 메뉴는 다르지만 카푸치노를 즐겨마신다. 작은 카페의 카푸치노는 적당한 양의 거품이 포근함을 주고 그 아래 약간의 쓴 커피가 위의 거품과 어우러져 담백한 맛을 낸다. 특별한 것은 커피와 함께 자그마한 컵에 꿀이 나오는데 마치 마법의 재료처럼 쓴 커피를 달콤하고 기분좋게 만들어주어 한 번 맛보면 다음부터 꼭 찾게 되는 중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를 주문하고 문 옆 창가 자리에 앉는다. 보통 가방에는 집 앞 도서관에서 빌린 일본작가의 소설책 한 권과 진행중인 작업구상을 위한 양장노트 그 사이에 끼워진 연필 그리고 이어폰이 들어있다.
카푸치노가 나오기 전까지 머릿 속을 비우기 위해 창 밖의 행인들의 발과 거리 조금 더 위로 지나가는 바람의 흔적들을 멍하니 응시한다. 행인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재빨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친절한 카페 사장님은 우드 트레이에 카푸치노 한 잔과 꿀이 담긴 조그만 잔을 함께 놓고 맛있게 드시라는 멘트를 남기고 자리로 돌아간다.
한참동안 커피를 내려다 본다.
진한 고동색이던 커피색은 하얀색 거품과
꿀 그리고 계피가루가 어우러져
연한 갈색 빛을 띈다.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섞이며 퍼지는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나에게 편안함과 안도감을 준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해 대부분의 날을 이 카푸치노와 함께했다. 기쁠 때, 슬플 때, 걱정이 많을 때, 신날 때 그 어느 때든. 좋은 기분이었을 때는 그 기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여유롭게 카푸치노를 음미했고, 반대의 기분이었을 때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탈출구로써 작은 카페의 카푸치노를 마셨다. 그래서 이 곳에는 추억이 참 많다. 그리고 이 커피, 카푸치노에도.
다행스럽고 또 기쁜 것이 있다면 요즘은 기분 좋은 마음상태로 카푸치노를 마주한다. 12월부터 가져온 혼자만의 시간 덕분이다. 요즘 카페에서는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그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기에 되도록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을 고른다. 지난 몇 달간 파악한 결과, 카페 오픈 30분 후와 마감 전 2시간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 시간이면 나도 모르게 가방을 챙겨 카페로 향하는 것이다. 그 여유를 아주 좋아해서 가끔은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고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럴 때마다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행복은 거창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사소하며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음을 카페 안에서 찾는다.
물론 가족, 친구들과 있을 때도 즐겁지만 그것과는 다른 혼자일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알려주고 싶지 않은 아주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시간.
어느 날 우연히 음악 플레이어에서 들려오던 음색과 멜로디에 흠뻑 취했고 작은 카페 분위기와 잘 어울려 몇 주간 줄곧 들었다. 잘 알려진 가수는 아니다. 그 이름은 보은. 영어이름은 클라라홍.
인터넷에 그녀의 이름을 쳐보니 별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1999년 8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 뉴저지로 이민을 간 보은. 동양인으로 놀림을 받던 상처를 치유해줬던 것은 음악이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가수의 꿈을 접지 못해 클럽에서 노래를 하기도 하고, NBC의 ‘더 보이스’오디션에 나가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알게된건 2015년 슈퍼스타 K를 통해서 이지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프로그램 종료 후 발표한 2곡의 자작곡을 듣고 난 후였다.
2017년 ‘0’라는 앨범을 낸 보은. 어리숙하지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녀의 바람을 앨범명에 담았다. 앨범 ‘0’은 4년 전 발매된 음반이지만, 아직 ‘1’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다음 숫자로 가는 여정인지, 길을 가다가 멈췄는지 알 수 없지만, 0에 담겼던 그녀의 지난 포부에서 나는 그녀가 그 여정을 멈추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다음 앨범을 준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녀는 결코 서두르는 성격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스타일이 더욱 좋다. 나와 이 세상의 속도와 다른 것 같아서.
앨범 ‘0’에 수록된 두 곡 중, 마음의 끌림이 컸던 곡은 단연코 100 rays. 첫사랑의 설레고 강렬한 감정을 태양의 빛에 빗대어 표현한 비유가 카푸치노의 몽글한 거품을 떠오르게 한다.
느리게 자신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보은은 언제나 자신만의 맛으로 커피를 내는 작은카페를 닮았고,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과 강약이 정확하지만 강하지는 않은 그녀의 목소리는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의 카푸치노와 잘 어울린다.
*보은의 100rays 라이브 영상은 여기에서
*보은의 희귀한 2017년 인터뷰 영상은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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