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스미 정원과 yeye
몇 년 전, 일본 오사카에 3일 정도 머물렀던 경험이 있다. 짧지만 강렬한 기억. 이른 새벽 차가운 공기와 깨끗한 거리를 걷는 부지런한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소곤소곤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기차 안 사람들. 똑같은 화이트 셔츠에 네이비 치마, 각기 다른 높이의 검정 스타킹을 신고 무리지어 가는 여학생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일본 출장이 결정되었을 때, 잠깐이지만 그 때의 여유로운 풍경을 다시 만날 생각에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첫 해외 출장지 일본에서 해야 하는 일은 간단했다.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좋은 참고가 될 만한 두 곳의 전시관을 1박 2일 동안 방문하면 되는 것. 출발일은 금요일이었고, 토요일에 충분히 돌아올 수 있었음에도 나는 기꺼이 나의 주말을 일본 여행에 쓰기로 마음 먹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나와 동료는 리무진을 타고 오다이바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도쿄 중심지에서 약간은 떨어진 지역으로, 지어진지 얼마 안 된 흰색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띄게 반짝이는 곳이다. 주거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한 것은 출퇴근 시간인 아침과 이른 저녁 시간대에 아리아케 역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새벽과 늦은 저녁 길거리엔 약간의 비현실적 오싹함을 느낄 정도로 사람이 드물었다.
도착한 날, 우리는 마감 시간을 코 앞에 두고, 두 개의 전시를 모두 보기 위해 쉴 새 없이 걷고 뛰었다. 밤 늦게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한 차례 수다를 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꿈나라로 떠났다.
다음 날. 우리는 호텔 앞 역에서 각자의 길로 떠나는 작별 인사를 했고, 나는 다음 숙소가 있는 긴자로 향했다. 덜그럭거리는 바퀴가 달린 캐리어를 끌고서 예약해둔 긴자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새하얀 침대에 잠깐 누웠다. 이번 여행, 왠지 느낌이 좋았다.
방을 나서 오모테산도로 가는 열차를 탔다. 신주쿠 캣스트릿, 하라주쿠 역을 지나 요요기 공원으로 향했다. 언젠가 부터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 조금 큰 공원을 가보는 ‘습관’ 같은 것이 생겼는데, 왠지 모르게 그 지역의 분위기를 닮았기 때문이랄까. 날 좋은 토요일에 친구, 가족끼리 삼삼오오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괜시리 외로워져 근처 푸글렌 도쿄 카운터 옆 바 스탠딩체어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흘러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음 날, 기차를 타고 근교 한적한 시골 동네, 기요스미 시라카와로 향했다. 역에서 얼마나 걸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 곳으로 들어가고 같은 곳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흐름에 몸을 실으니 마을 정원의 좁은 입구가 나왔다.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입구를 걸으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그림 속과 같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근사했다. 사람이 많았으나 마치 정원에 나 혼자 있는 듯 했고, 귀 기울여보면 구름이 이동하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았다.
맑은 하늘 뭉게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정원 중앙 호수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비현실적인 풍경은 절대 깨고 싶지않은 꿈 같았다.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은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콘텐츠를 추천해서 이따금씩 소름돋게 한다는 경험담은 나에게도 있다.
일본 출장을 가기 전.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유투브 영상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제목과 사진을 발견했다. 왠걸 너무 좋았는데 일본어라 가사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유라 유라(흔들 흔들)’ 이라는 낯선 어감에 자연스레 이끌렸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헤어진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상황. 그런 슬픈 상황치고는 참 담백하다는 느낌을 준다.
기요스미 정원을 걸으며 문득 이 노래가 머릿속에 떠올라 바로 재생버튼을 눌렀다. 저만치 앞에 연인의 뒷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햇살 아래 연못 옆 작은 바위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짧은 문장을 주고 받는다.
정원 중앙 호수의 물결이 공기의 흐름대로 흔들거렸고, 차츰 멀어지는 연인의 뒷모습이 햇살에 반사되어 아지랑이처럼 흔들거렸다.
*yeye의 ゆらゆら 뮤직비디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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