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과 HONNE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다 알진 못하지만,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으로 위험할 정도로 강렬하고 오묘한 빛을 내며 노을지는 하늘을 보았을 때. 나는 지난 날 엄마와 공원에서 나눈 ‘그 대화’를 떠올렸다. 숨을 헙 멈추고 말없이 차창 밖 노을지는 풍경은 지금까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어디론가 걷고 있을 때였다. 앞뒤의 상황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우리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깜깜한 하늘 안의 별 그리고 그 아래 반짝이는 빛.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들이 물에 비칠 때의 환상적인 밤 풍경에 매료되어 있었고, ‘한밤 중’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엄마는 답했다.
노을지는 하늘 풍경말야.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광경이잖아. 우리는 노을과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거지. 참 멋지지 않니?
나는 그 날에서야 '노을'의 단어가 'sunset'뿐만 아니라, 'sunrise'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 우리는 노을이 '진다'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내 가슴에 '콕' 박힌 엄마의 멋지고 우아한 답변은 노을을 볼 때마다 나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아 오늘 하루도 시작하는구나',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는구나' 하면서.
영국 유학생활 중,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아는 지인이 올린 공연의 실황 영상을 보게 되었다. 뮤지션의 이름은 HONNE였다. 그들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예였고, 일본에 매료된 그룹명 또한 일본어로 '솔직한 마음'이라는 뜻의 '本音'에서 따왔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음악을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되었다.
학부시절. 유학생활을 하면서 밤이 참 길다고 생각했다. 타국의 낯선 풍경과 내 방의 연결 통로는 머리맡 작게 나있는 창문이 전부였고, 그런 내게 HONNE의 음악은 좋은 친구였다. 그들의 음악은 우울함을 극에 치닫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었다. 어딘가 슬픈 멜로디와 서두르지 않는 창법은 이방인의 외로움을 조금 더 지독하게 만들었지만, 때때로 그 어느 것 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줄곧 타이틀 곡만 반복재생하던 어느날 문득 그들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그렇게 ‘Woman’이라는 곡을 듣게 되었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가사였는데, 늘어지고 힘을 툭 뺀 듯한 곡의 템포와 창법은 흔들리는 촛불처럼 유연했고, 따뜻했다.
반복되는 유학생활이 지루해질 즈음이면, 근교로 여행을 떠났다. 주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저녁 늦게 돌아왔는데, 기차에서 노을을 마주할 때가 많았다. 차창 밖 풍경을 보며 들었던 HONNE의 ‘woman’.
이따금씩 그 때의 지독한 고독함과 어디론가 떠나며 바라본 차창 밖 노을풍경이 그리워질 때면, 꺼내 듣는 나의 플레이리스트.
당신은 어떤 풍경을 좋아하나요?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드나요?
그 풍경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