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하와 루사이트 토끼
'인디'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독립된, 소규모의'라는 뜻으로 아무런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을 받지않고 오로지 그만의 색깔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인디영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영화가 있다.
여느 ‘인디’씬 사람들을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듯 인디영화도 감독 자신의 작업 스타일대로 진행되어 대개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상업영화와같은 명확한 기승전결을 느끼기 어렵다. 별 것 아닌 해프닝을 일반 상업영화의 두배가 넘게 담담하고 길게 풀어내기도 하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애매하게 만드는 복잡스런 요소들이 뒤섞여 있어 핵심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괴짜스러움과 의외성이야 말로 인디영화의 특별함이고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몇 년 전, 복합문화공간이 한창 붐이었을 때, 새로생긴 복합문화공간에서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프란시스 하'를 상영한다는 홍보글을 보게 되었다. 27살 꿈을 좇는 뉴요커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더 이상의 영화 줄거리를 읽지 않았다. 집이나 영화관의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곳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난 뒤에야 나는 이토록 매력적인 영화감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매우 기뻤고, 흥분되었다. 영화의 감독, 그레타 거윅은 영화의 디렉터이자 주연 배우였고, 나는 그에게 빠지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넘실대는 인터넷의 검색의 파도를 타고 들어가보니 그레터 거윅, 그녀가 제 2의 우디 앨런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는 뉴욕에 거주하는 27살 무용수 주인공 프란시스의 일상을 그려낸 이야기로, 그녀는 보통의 20대 후반과 같이 독립 후, 당장 내일의 생계가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 조금 더 나아보이는 것은 춤을 계속 추고 싶다는 꿈이 있고, 무용단 단원이라는 것. 이제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 없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야 함을 느낀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연말 무용단에서 제외되어 임시방편으로 모교 기숙사 감독이 되기도 하고, 몇 시간만에 계획에 없던 파리를 여행하는 등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살며 대책없이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존경스러운 점이 있다면, 남들 앞에서 절대로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지 않으며, 긍정적으로 미래를 꿈꾼다는 것. 꿈과 목표를 향한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들끓는 에너지는 외모도 실력도 무엇하나 뛰어날 것없는 27살 청춘 프란시스를 그 누구보다 반짝이게 만들며, 이 시간 뉴욕 안과 밖으로 그녀와 같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와 같은 나이가 되어 그녀를 다시 마주했을 때, 몇 년 전 영화 속 그녀를 마주했을 때보다 그녀의 입장과 상황이 더욱 와닿았고, 그래서 슬펐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은 청춘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의 고민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것만 같아 벅찬 가슴을 안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해야 하지만, 바로 다음날 아침.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이 너무나 작고 약하게 느껴져 어제의 부푼 마음으로 계획한 것들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마는 것도 부지기수다.
미국의 한 대학은 쥐 2마리로 희망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을 했다. 같은 크기의 생쥐 2마리를 물이 담겨있는 수조 안에 넣고 한 쪽에는 뚜껑을 덮고 다른 쪽은 열어두었다. 생쥐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데, 놀라운 것은 뚜껑이 닫힌 수조의 생쥐는 4시간 만에 죽었고, 다른 수조의 생쥐는 36시간을 생존할 수 있었다.
실험의 결과는 희망이 있는한 우리 삶은 계속되고 희망이 없으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이 있지만 곧바로 높은 벽의 현실에 좌절하고 가던 길을 돌아서고 만다. 하지만 오직 목표를 바라보고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면 반드시 당신은 그 끝에 도달해 있을 수있다. 혹시라도 고민과 좌절의 구렁텅이가 깊고 넓어 헤어나오기 어렵다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제거하고 목표와 희망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재빨리 돌려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레 되는 것이 아니며 연습과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돌리는 연습을 반복하고 학습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목표지점이 있지만 바로 앞에 놓인 장애물과 방해요소들이 자신을 힘들게 하여 그것 밖에 보지못하게 된다. 하지만 눈의 초점을 조금 더 멀리 넓게 바라본다면 위기로 생각되었던 고난의 시간들은 곧 당신 삶을 이끌어갈 원동력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보러가기 전, 영화소개 클립 영상을 보게 되었을 때, 루싸이트 토끼의 ‘렛 미 댄스’를 듣게 되었다. 사랑얘기 뿐인 대중음악에서 꿈을 향해 가자는 희망찬 얘기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참 반갑고 소중하다. 프란시스와 매우 어울리는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영화의 장면들이 빠르게 흘러가며 프란시스의 웃음기 어린 얼굴이 떠오른다. (실제로 나는 요즘에도 때때로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프란시스가 그리울 때면 이 노래를 듣는다. )
가사 또한 즐겁다. 내 꿈과 춤출거야.(또는 춤추게 해줘) 프란시스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녀의 앞에 서서 눈을 바라본 채 불러주고 싶다.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 많은 프란시스에게라도.
*루사이트 토끼의 let me dance를 여기에서
당신은 청춘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지금 당신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