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서두에 미리 적어야겠다. 나는 이제 갓 육아라는 걸 시작한 초보 아빠. 아이의 탄생 1일부터 50일까지 내 손으로 직접 살 닿으며 키우겠다는 목표를 아내와 함께 부지런히 실천중인 아빠. 다시 말하자면 육아의 육을 이제 막 경험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매일매일 실수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수련생이다.
당신의 육아는 무엇으로 보상 받나요?
다소 어그로 같은 제목일지도 모르겠다. 육아에 보상이 있을까. 보상이 있다면 그 가치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과연 어느 부모가 보상을 바라고 육아를 하고 있을까.
뻔한 말을 하자면, 지치고 힘들 때 아이가 생긋 웃어주면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고 한다. 하지만 탄생 한달 남짓 된 내 아이에게서 아빠 생긋! ;-) 같은 건 기대도 할 수 없고, 설사 이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 웃음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는 단계이다. 그저 "어머! 얘가 나를 보고 웃네? 어머머!" 호들갑 떨며 그렇게 믿을 뿐.
50일 육아에 도전하기 전, 나는 직장인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또 어떤 날은 남들처럼 오전출근 오후퇴근을 하는 평범한 회색빛깔 직장인.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해 나의 한시간 한시간 근무시간이 줄고 늘어남이 모두 돈이라는 보상과 직결되는 삶을 살고 있는 직장인.
그리고 지금은 모아둔 안식휴가와 출산휴가에 영혼까지 끌어모은 휴가를 보태어 50일 동반육아를 하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 긴 기간을 회사일로부터 떨어져 있어보긴 처음이다. 직장인 모드로 살아갈 때는 업무 특성상 일과 non일의 분리가 상당히 모호했다. 하루에 업무 관련 받는 톡만 수백개가 넘는다. 그런데 잠시 거리를 두고 살아보니 알겠다. 나는 퇴근 후에도 머리카락, 혀, 뇌 구석구석, 심지어 내뱉는 이산화탄소에도 회사일을 덕지덕지 묻히고 살고 있었다.
일 안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심각하게 일 속에 파묻혀 있었는지. 하지만 이제, 아이가 내 몸에 잔뜩 묻혀놓은 젖 비린내, 분유 비린내를 맡으며 살아보니 알겠다. 나는 정말 일 비린내가 진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과거의 나에게 정말 미안하고, 그 지독한 일 비린내를 맡아가며 곁에 있어준 아내에게도 미안하다.
현재 우리는 아내가 야간육아를, 내가 주간육아를 담당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매일 밤을 새워가며 2시간 간격으로 아이를 달래고 먹이고 트림시키고 쓰다듬어줄 자신이 없다. 게다가 고양이 두마리와 함께 살고있는 집 특성 상 낮에 내가 해야하는 (하고 싶은) 집안 일의 범위가 더 넓고, 아직 젖몸살과 출산 후유증으로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손이 많이 가는 허드렛 일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난 대학생 시절부터 일일일, 또 일일일, 일만하고 살았던지라 휴가 기간에도 머릿속에는 무언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다만 그 일이 회사일이 아니라 육아 포함 집안일 이라는 게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
대략 계산해보니 지난 일주일 간 내가 순수히 육아와 집안일에만 들인 시간이 하루 평균 16시간 정도 된다. 오해할까봐 적자면, 물론 아내도 함께 하고 있다. 우리의 R&R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내가 깨어 있다고 해서 아내가 100% 쉼을 누릴 수 있는 것도, 그 반대의 상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린 눈 뜨고 있을 때는 계속 뭔가 하고 있다. 그렇게 할 게 많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정말 깨작깨작 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밥만 먹여도 최소 30분씩 10번, 기저귀 갈이 15번, 빨래 2-3번, 청소, 설거지, 젖병소독 등등등. 24시간 중 아내와 나를 위한 행위들은 삭제된 지 오래이다.
도대체 과거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하루하루 느끼지만 그분들은 정말 대단하시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잠깐의 일탈은 필요하다. 나 역시 나만의 방법으로 일탈이 필요했다. 나는 술, 담배도 안하고, 만날 친구도 딱히 없으며 그 흔한 동호회나, 활동하는 웹사이트 하나 가입되어 있지 않다. 흔히 말하는 초식남 수준을 넘어 거의 엽록체 수준.
그렇다면 나는 과연 하루 16시간의 워킹아워에서 어떻게 숨구멍을 찾고 있을까. 어떻게 내가 이 강행군을 즐기고 버티고 있을까. 신기하고 나의 일탈은 생각보다 너무 단순하고 쉬웠다.
그냥.
육아를 하기 전 내가 해왔던 것들을 잠시라도 즐기면 되는 거였다. 아이를 먹이고 트림 시킨 뒤 한바탕 하이톤의 목소리로 놀아주고 나면 2시간 정도 잠이 든다. 그럼 그 때부터 나의 일탈이 시작된다.
-식물 물주기
-소소하게 집안 꾸미기
-하루 30분의 짧고 강한 운동
-영국 라디오를 틀어놓고 커피 한잔
그리고 이렇게 틈틈히 짧은 글로 기록 남기기.
하루에 단 한시간이라도 이런 여유를 경험할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친구? 회사일? 사회생활? 그런건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그 때 맞춰 익숙했던 내 모습으로 잠깐 살면 된다.
마치 자기최면처럼 나는 끊임없이 말한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즐겁다.
이 모든 시간이 의미있고
소중하다.
그런데.
내 아내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할까. 아내의 일탈. 아내의 탈출구는 무엇일까.
나는 숨구멍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그녀에게 필요한 건 시원한 바람길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