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보낸 산후조리원에서의 2주_ep.1
아내가 조리원에 들어갔을 때가
네 인생의 마지막 휴가야.
후회하지 말고 무조건 즐겨야 돼.
주변에 나보다 먼저 결혼한 모든 남자들이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정한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휴가를 반납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나 혼자 그 인생의 마지막 휴가를 즐기는 것보다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육아 실습을 아내와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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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택한 조리원은 산부인과 부속으로 운영됐다. 병원에서 도보로 3분 (옆옆건물), 집까지 차로 15분, 회사까지 버스로 20분, 주변에 큰 상권이 있어서 남편 식사나 간식거리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돈만 내면 아내 식사 시간에 맞춰 남편 식사도 같이 넣어주지만 한 끼에 1.5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먹을만한 가치는 없어 보였다.
산부인과에서 아침 일찍부터 퇴원 수속을 마치고, 오전 11시경 조리원에 입실했다. 조리원은 출산 전에 두 번이나 방문 탐방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설은 익숙했다. 우리가 2주간 집처럼 생활하게 될 룸은 거의 6개월 전에 예약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흘러 우리가 세 식구가 이곳에 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첫날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짐을 풀고,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집에 다녀왔다. 조리원에는 아내와 아이가 있고, 집에는 오매불망 집사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고양이 두 마리와 무더위에 물이 고픈 식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모의 컨디션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조리원 첫날에도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 후유증으로 힘들어했다. 게다가 본격적인 유축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조리원에서 두 팔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닿을 듯 말 듯한 약 200 km정도 남은 거리랄까.
집에서 해야 할 To Do List를 핸드폰에 적어두고 부랴부랴 집에 다녀왔다. 그리고 우린 마주 앉아서 저녁을 먹었고, 저녁 6시 반부터 8시까지 모자동실 시간을 가졌다.
남편의 시각에서 조리원이라는 곳은 참 묘한 곳이다.
출산 후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회복하기 위해 수백만 원을 들여 들어가는 곳인데, 맘 놓고 쉬기에는 뭔가 일정이 그렇지가 않다.
매일마다 2-3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아이를 어떻게, 얼마나, 잘 키우느냐라는 주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걸 빼먹고 방 안에서의 휴식을 선택하기란, 갓 엄마가 된 사람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맘 편히 쉴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내는 여전히 신통치 않은 유축 결과물에 대한 스트레스와 통증에 힘들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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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하루 한 번씩 차로 편도 15분 거리에 위치한 집에 왔다 갔다 하며 냥이들과 식물을 챙기고, 빨래, 청소, 짐 갖다 놓고 가져오기 등을 반복하고 있다. 출산일부터 하면 어느덧 일주일째 병원-집-조리원-집의 반복.
육체적으로는 미칠 노릇이다. 하지만 재미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명확하고 내가 그것을 잘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소소한 성취감. 그리고 아빠, 아내 편으로서의 책임감.
속싸개를 풀어놓으면 아기가 춤을 춘다. 항상 속싸개에 꽁꽁 싸매여 답답해 보였던 우주. 아기 침대가 아닌 우리 침대 위에 눕히고 (아내와 내가 양 옆을 지키고) 속싸개를 풀어놓으면 그때부터 우주의 쇼타임. 신생아 스타일의 흐느적 흐느적이 아닌 두 발 뻥뻥 차면서, 기지개, 날갯짓, 반 뒤집기 (이게 말이 되나..? 탄생 일주일 만에 몸의 절반을 뒤집으려 하다니)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활달하게 움직인다. 그 움직임에서 '건강함'이라는 게 솟구쳐 나온다. 그 모습을 행복한 모습으로 바라보며 미소 짓는 아내를 바라보는 게 너무 행복하다.
고맙다. 우주. 엄마 아빠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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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 부었던 아내 손 발의 부기가 조금씩 빠지고 있다. 꾸준한 관리 덕분인지 유축 양도 많아져서 이제 유축 실패와 통증으로 눈물 흘리지 않는다. 그것이 조리원 5일 차를 맞이하는 나에게 가장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여전히 집을 오고 가며 소소한 집안 일과 조리원에서 아내, 아들을 돌보고 있다. 돌본다?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케어 (결국 같은 뜻 아닌가) 한다고 하면 조금 다르게 느껴지려나.
아내가 출산 후 조리원에 들어오면 고생 끝 휴식 시작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2019년에 했던 가장 큰 오산이었다.
매일 아침 6시 반 기상, 07시-08시 모자동실, 08시 아침식사, 그리고 허리와 어깨가 불편한 자세로 앉아 40분간의 유축이 끝나면 모유수유를 시도하고, 점심식사 이후 다시 유축. 오후에는 가슴관리 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저녁을 먹고 나면 저녁 모자 동실.
오전/저녁 식사시간과 모자동실 시간이 애매하게 이어져 있어서 밥을 여유 있고 편하게 먹기가 쉽지 않다. (물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면 그만큼의 시간을 식사시간으로 쓸 수 있다)
우주는 여전히 활발하다. 이제 눈도 잘 맞추고 어느덧 2-3시간에 한 번씩 70ml의 분유+모유를 먹는다. 꿀꺽꿀꺽. 우주가 내 품에 포옥 안겨 젖병을 빠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우주가 분유를 먹는 동안은 우주와 젖병, 아이를 보호하는 내 품과 트림을 유도하는 내 손이 온 세상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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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자정이 넘은 시각. 우리는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간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다. 어디 비밀 외출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리원의 좁고 긴 복도를 뒤뚱뒤뚱 걷는다. 아내 손을 잡고 조리원을 걷고 있으면 이곳은 나에게 산책로가 된다. 별것 아닌 이런 사소한 행동이 나중에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건강한 아이를 순산한 아내의 회복을 위해 머무르는 조리원에서의 심야 산책. 아내와 내가 함께 손을 잡고 걷는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 곤히 잠든 우리 아기를 바라본다. 뭐 하나 나쁠 게 없다. 뭐 하나 좋지 않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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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축과의 전쟁
직수도 가능
우리 아이만 특별한 걸까
처음으로 침대에서 같이 잠이 들었다.
우리 세 식구가 처음으로 침대에서 같이 잠들었다.
30분. 대담하고 위험하면서도 행복했던 순간.
우주는 알까. 엄마 아빠의 이런 마음을. 우리가 우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는 알았을까. 아니.
언젠가 그 깊이를 깨닫게 될까.
수십 년 전 부모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며 키우셨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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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에 1.5만 원 하는 식사가 점점 미워진다. 5일 동안 병원밥만 먹다가 조리원에서 나온 첫 식사를 보았을 때의 감탄은 이미 끝이 난 지 오래전. 산모의 회복을 위한 맞춤형 식단이라고 하지만 1.5만 원은 투머치라는 생각.
아빠를 위한 아침으로 토스트와 딸기잼, 버터 오렌지 주스가 제공된다.
조리원은 엄마를 위한 곳이니 이 마저도 감사하게 먹고 있지만, 치즈라도 한 장 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서 나는 치즈와 햄을 사 와서 매일 아침 나만의 햄치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출근길에 트림을 하면 이곳이 외국 같다. 조식 뷔페에서 먹은 치즈와 햄,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먹고 트림을 했을 때 나는 그 냄새.
으....
내가 점점 이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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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킬로가 된 우주는 유난히 활달하고 힘이 세다. 조리원 어머니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은 듯하다. 나는 고슴도치 아빠인가 보다. 이제 조리원 신생아실 침대가 우주에게 좁아 보인다. 속싸개로부터 양팔이 자유로워졌다.
바둥바둥. 힘이 좋은 우주는 오늘도 손발을 힘차게 움직이고 한 번에 90ml의 분유를 먹어치운다. 물론 트림도 시원하게 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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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교육과 아이돌보미 교육을 받았다. 우주와 함께 집으로 가는 게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조리원에서 가까이 지내던 유일한 부부가 퇴원했다. 그 부부의 방문 앞에 여전히 붙어있는 이름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허전함. 우리가 2주간 내 집처럼 지냈던 이 방도 곧 저렇게 잊히겠지.
주말이 지나면서 새로 들어온 아기들이 많아졌다. 마치 부대에 신병들이 입소한 것 같다. 기껏해야 4-5일 된 애기들. 아기들이 정말 작다. 우리 우주도 저렇게 작았을까. 지금은 너무 건강하고 활발하고. 그리고 크다. 고마운 12일 된 나의 아들 우주.
조리원 생활이 이제 하루 남았다. 걱정 반 기대 반, 기다림 반.
은히, 그리고 우주야. 우리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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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 모동시간에 우주가 큰 선물을 줬다.
30분 간격으로 2번의 변 보기. 2번째 변 기저귀를 갈 때 손 위에 오줌 발사. 따듯해지는 손목을 느끼며 기저귀를 갈고 똥을 닦고 있는 손가락들. 더러움?이라는 느낌과 감정은 전혀 없다.
미숙하고 섣불렀던 트림 유도로 인한 분유 폭포 (분수처럼 뿜어내진 않았지만 소화 못 시킨 분유를 옆으로 다량 흘러내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번의 변. 1시간 사이 6번의 기저귀 갈음.
만약 이것들이 조리원이 아닌 집에서 발생했다면 우리는 정말 당황하고 예민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건 우주가 우리에게 준 아주 큰 경험이라는 선물.
우주야. 엄마아빠, 이제 이런 일들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하나씩 천천히 해결해 나갈게. 분유 먹고 난 뒤에는 무조건 트림을 1순위로. 약속할게. 미안하고 고마워.
아내와 야간 외출을 신청하고 집에 다녀왔다.
아기침대 세팅, 방 청소기, 물걸레질, 퇴원할 때 입을 옷. 목욕용품 정리.
점점 실감이 난다. 우리 세 식구. 내일 이 시간에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아빠가 잘할게. 조리원에서도 최고 건강으로 있어줘서 고마워 우주.
나는 최선을 다해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