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쓴 제왕절개 출산 후기

도대체 왜 아내만 힘들어야 하는가

by 집사가 되고싶다


34주 차, 제왕절개 수술 확정


태아의 성장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 상태로는 40주에 4kg을 거뜬히 넘을 기세였기에 34주 차 검진 때 제왕절개 수술을정했다. 수술 결정 이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제왕절개 수술 준비/리뷰를 찾아봤다.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자연분만은 선불제 고통, 제왕절개는 후불제 고통'이라고 했다. 후불이든 선불이든, 어쨌든 고통 없는 출산은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나의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수십 개의 리뷰를 읽고, 보고 메모했다.


예습. 시나리오. 복습. 또 시나리오.


하지만 남의 후기는 말 그대로 남의 일.
우리에게 닥친 현실은 현실이었다.




38주 2일. D-day


아내는 큰 수술을 2번이나 겪고, 운동을 하다가 발목 인대파열도 겪어 본 사람이다. 그래서 웬만한 통증은 굳건하게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여자였다. 그런 아내에게도 제왕절개 수술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나 보다.


https://brunch.co.kr/@elephantasy/93


수술 후 병실에 돌아온 아내의 상반신은 진통제와 포도당, 그리고 페인버스터 선이 서로 뒤엉켜 꽂혀 있었다. 하반신은 수술 당시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처와 핏자국, 오로와 소변줄이 보였다. 그런 상태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가만히 누워있는 아내의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아내 앞에서 울 수 없었다.


2017년, 유산으로 뱃속의 아이를 떠나보내던 날 아내 앞에서 너무 많이 울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아내 앞에서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취기운이 남아있는 첫날은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보다 조금 덜 아파 보였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인 것일 뿐, 아내는 온 힘을 다해 꾹 참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수술 전부터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못난 남편을 보며,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돌아왔을 때 이미 녹아버린 남편의 멘탈을 보며, 아내는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까. 본인 몸 챙기기도 힘든 상황에 나를 조금이라도 안심시키기 위해 침대에 누워 나름의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내가 자기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아니까. 그래서 내가 속으로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을지 누구보다 제일 잘 아는 여자이니까.


수술 후 6시간 뒤 아내는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수술 전날 밤부터 금식이었으니까 거의 20시간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누워 거친 숨을 쉬고 있는 아내 입술에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마른 입술에 생기를 전달해주고 싶었다.


의사의 음수 허락이 떨어지고 물을 마실 때는 누운 채로 고개만 옆으로 돌려 빨대를 사용해서 아주 천천히 마셔야 했다. 물이 조금이라도 기도로 들어가면 기침을 할 수밖에 없는데, 기침을 하면 복부에 힘이 가해지면서 수술부위를 칼로 찌르는 고통이 느껴진다고 했다. (물을 급히 마시던 아내는 이런 고통을 5번은 경험한 것 같다.)



미리 준비해둔 텀블러와 1회용 빨대 수십개.


D+1,2,3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나면 2-3시간에 한 번씩 간호사 분들이 방에 들어와서 아내의 상태를 확인하고 간다. 말인즉슨, 우리는 최소 2-3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깨야 했다는 것. 이틀째로 접어드는 새벽부터 아내의 고통이 심해져서 어차피 깊은 잠을 잘 수 없었지만, 잠들만하면 계속되는 검진 덕분에 입원기간 중 단 하루도 편하게 잘 수 없었다. 물론 편하게 자겠다는 마음으로 수술회복 중인 아내와 5일간의 동실을 결심한 건 아니다.

잦은 검진은 내 아내가 그만큼 큰 수술을 받았다는 뜻이고, 그만큼 최선을 다해 관리받고 있다는 사실일 테니. 숙면의 욕구 따위가 끼어 들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 일어나면 몸이 6등분 된 것 같은 느낌을 전해 준 보호자용 소파베드는 너무했다.


이건 정말 인생 최고이자
최악의 통증이야..


제왕절개 수술을 받으면 진통제 외, 무통제와 페인버스터라는 슈퍼울트라진통제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유료. 그것도 한통에 16만 원(페인버스터 가격. 무통제는 수술비용 포함금액)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무통제와 페인버스터가 없는 제왕절개 수술 회복이 가능할까? 나는 수술 당사자가 아니라 그 효과를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병실에서 가장 많이 본 장면 중 하나는 아내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무통제 투입 버튼을 누르고 페인버스터의 잔여량을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헹거에 걸린 진통제(좌)와 가슴 부분에 부착하는 페인버스터


진짜 고통의 시작

제왕절개 수술 후 가장 힘든 건, 이튿날 소변줄을 뺀 뒤 혼자 힘으로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 것이라고 하던데,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니 실제로 그래 보였다. 다행히 전동침대의 힘으로 70도가량 몸을 세우는 건 큰일이 아니었지만, 몸을 옆으로 돌리고 발을 땅에 딛는 행동을 할 때마다 복부에 전해지는 통증이 엄청난 것 같았다.

어쨌거나 사람이 일어서려면 복부와 허리에 힘이 안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부축이나 도구를 잡고 지탱한다 해도 그 통증을 이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아내 말로는 뱃속의 장기들이 뒤엉켜 있다가 순간적으로 동시에 쏟아지는 느낌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아파야 저런 초현실적인 표현이 가능할까.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었고,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이런 고통은 3일 동안 계속됐는데, 많이 걸을수록 회복이 빠르고, 나중에 아기와 더 많은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다는 말에 아내는 필사적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허리에 힘을 줄 수 있게 된 이틀째부터 수시로 일어나려 했고, 일어날 수 있게 된 순간부터는 계속해서 병원 복도를 걸으려고 했다.

"한 바퀴만 더. 저기까지만 더."

끔찍한 통증 속에서도 아내는 조금 더 걷고자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해서 우리 아기를 안고 싶어 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너무나 불편해 보였는데, 본인은 말 못 할 그 고통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마웠던 전동침대와 각도 조절 리모컨


산전수전 다양하게 겪어 본 아내이지만, 제왕절개 수술 후 3일간의 통증은 인생 최대 최고 최악의 고통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를 악물고 잘 견뎌냈다.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더 길게,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우리 아기를 품에 안고 느껴보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모든 고통과 불편함을 이겨냈다.




지금도 수많은 산모들이 온 정성을 다해 소중히 품은 아기를 만나기 위해 출산의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누구는 자연분만으로, 또 누군가는 아내처럼 제왕절개 수술로. 그 고통이 선불이든 후불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선불제? 후불제?

이런 유머스러운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성스럽고 위대한 고통이다. 임신 순간부터 출산, 그리고 언제 끝날 지 모를 회복의 순간을 살고 있는 아내는 위대하다. 내 아내뿐만 아니라 이런 과정을 겪었던 모든 엄마들, 그리고 출산을 준비 중인 예비 엄마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대단하고 고마운 존재이다.



자기를 위해 엄마가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아기는 다행히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당연히 모르겠지.. 나도 이 나이 되도록 내 어머니의 고통에 대해서는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어느덧 순산 20일째.

지금 우리 부부가 그렇듯, 모든 이들이 건강한 아이를 순산하고 서로 아끼며 살아가면 좋겠다.




(번외)


혹시 제왕절개 수술을 앞둔 임산부가 읽고 있다면, 남편에게 꼭 전해주시길.


절대 나를 웃기지 마세요.


제왕절개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임산부는 절대 웃으면 안 된다고 한다. 웃을 때마다 복부에 힘이 들어가면서 기침할 때처럼 수술 부위를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고..


아내 역시도 수술 부위가 아물기 전까지 웃으면 안 되는데, 그녀는 나 때문에 아파서 죽을 뻔했다고 한다. 나는 천상 재미없는 사람인데.. 내가 자기를 그렇게 웃겼다고..


가령 그런 게 너무 웃기다고 한다.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서서 "저 이제 그만 가볼게요"라고 말한 뒤,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손을 흔들며 상반신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 모습. 물론 나는 어딜 내려가거나 하지 않고 아내 곁에 있다. 다만 제자리에서 무릎을 조금씩 굽혀가며 안장 걸음으로 아내에게 손을 흔들고 상반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갈 뿐인데. 이런 몹쓸 행동이 아내를 여러 번 울려버렸다.




잊기 전에 미리 적어두자.

다음에는 고통이라는 단어를 빼고,
4박 5일 입원 생활의 소중한 장면 하나하나를 기록해 봐야지.


아..

모유수유를 위한 가슴관리를 이야기할 땐 '고통'을 빼고 적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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