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출산일. 현실적인 3시간의 기록.

제왕절개 수술

by 집사가 되고싶다


수술 당일.
간밤에 뒤척임도 없이 우리는 푹 자고 여유롭게 기상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소리를 들으며 "우리 10분만 더 자고 일어나자" 라고 속삭이면서 손을 꼬옥 잡은 채 그대로 10분을 더 잤다.


지난 밤 대부분의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아침의 시작은 꽤나 여유로웠다.


(남편 입장에서) 제왕절개 수술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미리 정해진 일정에 맞춰 마음과 몸의 준비를 마치고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설 수 있다는 것. 음악을 한껏 크게 틀어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외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거실로 내려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냄새가 이상했다.




고양이의 오줌, 그리고 역주행


거실에서 묘한 냄새가 났다. 고양이 오줌 냄새 같았다. 아니 얘네들이 거실에 소변을 볼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 일이 생겼다. 거실에 오줌을 싼 적도 없었지만, 심지어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리끌라이너와 거실 군데군데 오줌을 흩뿌려놨다. 도대체 왜... 하필 오늘..........


여유 넘치던 우리의 아침은 그렇게 산산조각 났다.

아내 뱃속에 있는 아기와 첫 인사를 하는 날이라고 나름 풀셋팅 외출모드를 장착한 나는 그대로 걸레를 집어들고 고양이 오줌을 닦았다. 리끌라이너에 묻은 오줌도 닦아내고, 혹시나 다른 곳에도 튀었을까봐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며 거실 바닥을 걸레질 했다.


갑자기 시간이 촉박해지기 시작했다. 시동을 걸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출발. 다행히 병원까지 차가 막히진 않았지만, 입원환자 차량은 병원이 아닌 맞은편 CGV건물에 주차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지하로 내려가는데 또 기분이 이상했다. 주차장 구조는 회오리처럼 돌아내려가는 일방통행. 그런데 아래에서 헤드라이트 빛이 보였다. '아니 이런 미친...' 욕이 절로 나왔다. 한 SUV차량이 역주행으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약 2m 거리를 남겨두고 다행히 우리는 충돌하지 않았지만 아내와 나의 긴장과 압박감은 더 커졌다.


무사히 주차한 뒤 손을 꼬옥 잡고 말했다.
"우리 우주가 건강하게 태어나기 위해 아침부터 액땜을 했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주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위한 액땜이 아니라, 아내와 우주 모두의 안전, 순산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이게 아직도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수속과 병실 배정


입원, 수술 수속을 마치고 병실을 배정 받았다. 다행히 1인실. 혹시나 제왕절개 수술 예정자의 남편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수술 후 병실은 1인실로 결정하길 추천한다. 고민과 망설일 여지가 없다.

첫째, 밤낮 구분없이 2-3시간 간격으로 치료와 회복이 최우선인 아내를 위해,
둘째, 하루 2회 모자동실 환경을 생각해서,
셋째, 남편의 건강과 정신을 위해.


물론 다인실은 보험적용으로 입원비가 무료라는 장점이 있지만, 1박에 16만원-20만원 정도 하는 1인실의 경우, 그 장점이 몇 십만원의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낯설고 늘 기분 찝찝한 병실. 우리는 이곳에서 4박5일동안 보낼 예정이다. 내가 짐 정리를 할 동안 아내는 수술 준비를 한다. 갑자기 간호사 한분이 휠체어를 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 휠체어에 아내를 앉히고는 나보고 방에서 대기하라고 한다.


"2시간 정도 후에 방으로 돌아올 예정이니 남편분은 그 까지 방에서 대기 하시면 돼요."


나는 이 말이 정말 싫었다. 말투가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저 말이 내포하는 현실 그 자체가 싫었다. 아내는 지금 수술복을 입고 수술대에 누운 채 인위적으로 배를 가르고 10개월동안 소중히 품은 생명을 꺼내는 인생수술을 받으러 가는데, 남편은 고작 방에서 2시간동안 멀뚱멀뚱 대기나 해야 하다니. 하다못해 수술하는 아내 옆에서 눈을 마주치고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현실은 병실 쇼파에 앉아 핸드폰이나 하면서 아내를 기다리는 것이라니.


"저도 따라가면 안될까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는 아내와 함께 있고 싶었다. 최대한 가까이 있고 싶었다. 간호사의 동의 하에 나는 아내가 탄 휠체어 옆에 바짝 붙어서 수술실 입구까지 동행했다. 수술실 문이 열리기 직전 아내 이마에 짧은 키스를 하며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따가 우주랑 같이 만나자." 라고 말했다. 아내가 아주 진한 웃음을 나에게 보내고 나서 수술실 문이 닫혔다.





오전 11:37분_우렁찬 3단 울음대잔치


아내는 예정대로 정확히 11시에 수술실로 들어갔고 나는 분만실 앞에서 대기했다. 11시37분. 굳게 닫힌 분만실 안에서 짧고 강한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한여름의 매미처럼 세찬 울음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안절부절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라는 표현은 누가 만들었을까.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적어도 최소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나는 한 곳에 서 있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분만실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11시 42분. 분만실 문이 열렸다. "ㅇㅇㅇ 산모 보호자분, 들어오실게요."


"네!"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대답할 뻔 했다. 애써 침착한 척 하며 분만실 안으로 들어갔다.


"산모는 건강한가요? 산모도 같이 볼 수 있나요?"

"산모는 수술실에 있어서 가 알지 못해요. 저희는 아기만 보여드리는 거예요."




38주2일, 3.8kg, 52cm


매일 밤낮 없이 아내 배에 얼굴을 대고 우주에게 말을 걸었다. 내 말에 반응을 하는지, 그럴 때 마다 우주는 강한 태동을 보여줬다. 그렇게 우리는 수개월간 되지도 않는 커뮤니케이션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아이가 세상에 갓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누워서 힘차게 울고 있다.


건강하게 파닥거리며 한껏 울어대는 저 아이가 우주. 아내와 내가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고 기다리고 사랑해 온 우리의 첫 아이.



코가 나를 닮았다. 손톱 발톱도 나를 닮았다. 이쁘다. 사랑스럽다. 라는 감정 대신, 이렇게 크고 활달한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었다니.. 이 힘찬 태동을 수개월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냈던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리고 이 아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간호사가 전해 준 가위로 미끈미끈한 탯줄을 잘랐다. 한 번에 잘리지 않는 탯줄을 여러차례 가위질로 쓱쓱 잘라내니 그 안에서 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아내와 나, 그리고 우리 우주가 10개월 간 함께 만들어 낸 피가 흘러 나왔다.


다시 한번 아이를 바라본다.

아가. 우리 아들.


"우주야. 우리 우주 잘 있었어? 보고 싶었어." 라고 나지막히 말해본다.


그러자 물고기처럼 바둥거리던 아기가 갑자기 얌전해졌다. 소독제로 손을 깨끗이 닦고 검지 손가락을 내밀었더니 우주가 내 손가락을 있는 힘껏 꼬옥 쥐고는 놓지 않는다.



나는 다시 아기 이름을 불러본다.

내 손을 꼬옥 잡고 함께 같이 잘 살아보자는 기운을 강하게 전달하는 이 아이. 아내와 내가 그토록 바랐던 우리 우주.


하얀 종이에 아이 발도장을 찍은 뒤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곧 우주와 헤어졌다.



다른 간호사분이 아내의 안부를 전해줬다. 1시간 뒤 마취가 풀리면 병실로 이동할테니 꼭 병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한다. 물론이죠. 당연히 그래야죠.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아들.

우주. 우주야.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줘서 고마워.


바깥 세상의 모든 건

이제 아빠 엄마에게 맡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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