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둔 아내에게 전하는 솔직한 마음

by 집사가 되고싶다


1개월 후에 아빠가 된다.

내가 먼저 묻지 않아도 주변에 '선배아빠'가 된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조언과 충고와 겁을 주고 자신의 경험담을 무용담 장르로 바꿔 이야기 하곤 한다. 하나같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면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파 지는가에 대한 강의 일색이다. 모든 이야기가 아이에 집중된다. 힘든 것도 아이로 인해, 행복한 것도 아이로 인해, 핸드폰 속 사진도 아이, 영상도 아이, 아내와의 대화 주제도 아이.


당연하다.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벌써부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주제가 90% 이상 되는 것 같다. 매순간 아내 뱃속에 있는 아이를 소환시켜 대화 주제로 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 대화 속에 주체로서의 나는 없고 아내도 없다. 늘 누구 아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 누구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내가 등장한다.


얼마 전 아내와 마트에 가서 커다란 정리함을 하나 구입했다.

목적은 미리 사둔 아기용품, 옷가지들을 보관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그 보관함에 물건들을 채워넣진 않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 상자의 뚜껑을 열고 아기 용품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보관해둘 때, 우리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보관함의 문이 열리며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의 모습을 하나 둘씩 집어넣게 될 꺼라는 생각. 아기용품처럼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고 예쁘게 접어서 소중하게 보관하는 게 아니라, 이게 언제 여기에 들어갔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어떤 것들은 구겨진 채, 어떤 것들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또 어떤 것들은 더 이상 세상에 나오면 안되는 모습이기 때문에 강제로 강금시키듯. 그렇게 우리의 모습을 하나씩 마음 보관함에 집어 넣게 될 것 같다는 생각(확신)이 들었다.


9년전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20대의 들개 같던 나의 모습이 말끔히 지워졌다. 그리고 아내 역시 나를 만남으로써 과거의 많은 모습이 지워졌겠지. 특히나 내 아내는 남들보다 이른 결혼으로 인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아름다운 봉오리 들도 많을 것이다. 8년간의 결혼 생활을 하며 각자 조금씩 지워지고 지워버린 과거의 모습이 차지했던 자리에, 남편으로서 아내로 가족으로서 새롭게 만들어 낸 모습들을 하나둘씩 채워왔다. 8년동안 새롭게 만들어진 그것들과 과거의 내가 남긴 흔적들이 모여 2019년 5월, 지금의 내가 됐고 지금의 아내가 되었겠지.


그리고 한달 뒤, 우리의 첫 아기가 탄생하게 되면 '지금의' 우리 모습, 내 모습, 아내의 모습은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수동태로 표현하고 싶다.


두렵거나 아쉬운가?
전혀. 하지만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우리 둘이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던 8년이라는 시간. 우리의 의사가 중심이 되어,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채워 나갔던 8년이라는 시간. 8년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온 수백, 수천만개의 우리만의 순간들. 그 시간이, 지금 현재의 모습이 너무나 그리울 것 같다. 만약 우리 아이를 처음 만나는 순간을 제외하고, 내가 눈 흘리는 순간이 생긴다면.. 아마 그건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온 지금 우리의 모습이 미치도록 그립고 보고싶어서가 아닐까.


지금 당신의 모습. 아이가 아닌 본인을 위해, 나를 위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애써왔던, 누구 엄마가 아닌, 이은희라는 당신의 모습이 그리워서 눈물이 흐르지 않을까. 지금 이렇게 사랑스러운 당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오늘도 내 옆에서 8년 전 늘 변함없이 그래왔듯, 밝고 사랑스럽게 웃고 장난치는 당신의 모습이 잊혀질까 그 순간순간을 기억에 담는다. 두번 다시 오지 않을.. 우리 둘만의 사랑하는 시간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잊고 싶지 않아서.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바보같이 눈물이 흘러 내린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고 믿고 있다. 지금 우리가 꼬옥 잡은 두손 사이에 우리의 아이가 들어온다는 것이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더 큰 행복으로 자라나 우리가 마주잡은 손을 더욱 튼튼하고 따듯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서로 격렬하게 사랑하고 아끼고 있고, 지금과는 또 다를 미래의 우리 모습 역시 변함없이 사랑하고 믿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두렵지 않다. 늘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천방지축 아기 고양이같은 사랑스러운 당신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해도. 지난 9년간 보지 못했던 당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설령 그것이 내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낯설음이라 해도,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을 담아 당신과 우리 아이와 함께 할 것임을 알기에.


문득 지금 당신의 그 모습에 진심으로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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