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서 아내편으로
임산부의 남편이 된 이후로, 밖에 나가면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던 임산부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퉁퉁 부은 발목과 손목.
살짝 볼록하게 나온 배. 탱탱볼 처럼 불룩 나온 배. D-day를 앞둔 아래로 처진 만삭의 배.
그리고 점점 부담되는 배를 지탱하기 위한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 걷다가 잠시 멈춰 허리에 손을 얹고 푸욱 내쉬는 한숨.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임신한 내 아내의 배에도 예외는 없었다. 임신 6개월이 넘어가면서 아내는 계단을 오르 내리거나 차를 타고 내릴 때 불편함이 커졌다.
몇 년 전부터 남편들의 임산부 체험복이 유행처럼 미디어에 소개됐다. 그리고 아내와 즐겨보는 예능 프로에서 한 남자 출연자가 임산부 체험복을 입고 아내의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나도 '아내가 임신을 하면 저런 체험을 해봐야지. 아내의 고통을 체험해봐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아내가 임신을 하고 나서 내 생각은 달라졌다.
임산부가 겪는 불편함은 남편이 간접체험 따위로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비슷한 시도를 해본 적은 있다. 2-3kg 남짓한 수박을 들고 계단 2층 오르내리기. 헐렁한 티셔츠 안에 수박을 넣고 배를 내밀고 걸어보기. 딱 한 번 해봤다. 그리고 수박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간접체험? 임산부 체험?
당신이 뱃속에 무거운 아이와 양수를 품고 힘들게 생활하고 있으니, 나도 똑같은 무게의 체험복을 입고 불편하게 생활하면서 당신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지내볼게.
'이런 게 과연 아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임산부 아내를 옆에서 바라보며 깨달은 게 있다.
임산부에게 필요한 건 체험복을 입고 옆에서 함께 끙끙 거리며 '아이고 힘들다. 아이고 나죽네. 나도 같이 고생한다.' 라고 내색(생색)하는 남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내의 부족한 체력을 대신 해줄 수 있는 튼튼한 남편,
호르몬 영향으로 예민해진 아내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있는 남편,
아내가 집안일에 최소한의 관심을 갖게 먼저 움직이는 남편.
아내에게 필요한 건 무거운 체험복 따위를 입고 낑낑 거리는 남편이 아니라, 그 어느 때 보다 튼튼하고 건강한 몸과 정신을 보유한 남편이었다.
나는 그런 남편(아내편)이 되고자 했다.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남편. 내가 되고자 했던 건 현실적인 남편이었다.
현실이란,
아내가 힘들다. 나는 직장인. 그런데 집에 해야 할 것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고양이 두마리는 여전히 똥오줌을 싸고, 사료가 필요하다. 수십개의 화분은 적당한 시점에 물이 필요하고, 집에서 밥을 먹으면 설거지 거리가 쌓인다. 물론 음쓰도. 배달음식을 먹으면 재활용거리가 쏟아진다. 바닥을 나뒹구는 고양이 털과 쌓여만 가는 계단 먼지.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런데 만삭의 아내는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다. 온몸의 신경과 정성, 힘을 다해.
임산부를 위한 남편의 역할은 무겁고 불편한 임산부 체험복을 입고 출퇴근 하며 주변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다.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현실은,
아내가 임신을 한 현실에서 남편이 해야 하는 것은, 산적해 있는 현실거리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것. 아내의 불편함을 최소화 시키고 불필요한 신경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
왜?
아내는 우리가 함께 만든 우리 아이를 뱃속에서 혼자 키우고 있으니까.
내가 더 튼튼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아내를 보필하는 게 더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그렇게 해왔다.
그렇게 나는 내 입장에서 최선을 다 했고, 아내는 그보다 더 한 정성으로 아이를 품은 덕분에 우리는 38주 2일이 되던 날 건강한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혹시나 임산부 체험을 생각하는 남편들이 있다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저기요. 괜한 고생하지 마시고, 그 마음과 체력을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세요. 아내에게. 당신의 아이를 품고 있는 아내를 위해.
'임산부'라는 타이틀을 가진 우리의 아내는,
점점 크고 무거워져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3kg짜리 수박같은 생명을 뱃속에 넣고, 그 생명에 트러블 하나 생기지 않도록 24시간 온 신경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 잊지 말아주길.
임신과 출산은 위대하다.
그리고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