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잘해야 할까
'돼지 꿀에 포도 봉' 꿀봉이라는 태명을 가진 생명이 우리에게 찾아온 뒤, 우리는 단 하루도 '섣부르게' 보낸 적이 없다. 오늘, 지금 이 하루가 어서 지나야 내일이 오고, 내일을 잘 보내야 또 다음날이 오고, 그렇게 하루하루 의미있게 보내다보면 비로소 일주일,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내의 방식으로 온몸의 신경을 활용해가며 배속에 있는 꿀봉이와 교감을 하는 동안, 나는 내 나름의 교감 방식을 고민한다.
'어제는 이렇게 말을 걸어 봤으니까.. 오늘은 이런 방법으로 말을 걸어볼까?'
'어제는 브레멘 음악대를 들려줬으니.. 오늘은 아기돼지 삼형제를 들려줄까?'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 더 많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꿀봉이를 기다리고 있다.
출근 길 버스 안에서, 회사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또 퇴근 길 버스 안에서, 임신/출산 경험이 있는 부부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어플을 켜고 뻔한 내용을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어플 속의 태아 이미지가 실제 내 아이인 냥 믿으며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의 이미지를 발견하면 바로 캡쳐 버튼을 누르고 아내에게 공유하며 서로 키득키득 거리곤 한다.
임신 후 출산까지 걸리는 시간 280일.
280일이라니.. 단위를 day가 아닌 hour로 바꾸면 시간 줄어드는 게 조금 더 빠르게 체감되지 않을까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계산해보니..6,720시간.. 그냥 최선을 다해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시간의 연속.
저 끔찍하도록 길게 느껴지는 시간의 절반이 지났다. 140일, 5개월이라는 시간.
5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우리 부부의 일상은 ' 긴장과 걱정', '기대와 자제'로 가득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한 달에 몇 차례씩 병원을 오가고, 정말 무시무시했던 입덧의 공포도 경험했다. 그렇게 안정기가 찾아오면 말 그대로 모든 게 안정되면서 그간의 고민과 고난이 쨘- 하고 해결될 것만 같았지만, 아내는 점점 커지는 자궁과 신체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느라 또 다른 차원의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남편들이 힘들어봤자 뱃속에 자라나는 생명을 품고 10개월을 지내야 하는 아내의 '힘듦'에 비교나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에게 가장 힘든 건,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아내를 옆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힘들지..", "응? 어디? 어떻게 아프다고?", 이런 형식적인 말 밖에 해줄 수 없는 현실. 호르몬 변화로인해 갑자기 성난 듯 언성을 높며 말하는 아내가, 사실은 지극히 차분하고 흥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나도 모르게 '욱' 하는 표정과 말투를 내비쳤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후회. 다시 말하면, 아내가 느끼는 그런 육체와 감정의 변화를 고스란히 공감할 수 없다는 그 현실이 힘들다.
아내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이 모든 과정을 처음 겪어보는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내 꿈은 좋은남편 좋은아빠
내 꿈은 좋은남편 좋은아빠가 되는 것이다. 너무 추상적이고 두리뭉실한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삶에 있어 모든 기준을 '좋은남편 좋은아빠'되기 에 맞추면 의외로 쉽고 명쾌한 방향이 보인다. 140일. 140일이 지나면 눈 앞에서 이유없이 울어대는 꼬물이를 바라보며 지금 내가 하고있는 수백, 수천가지의 다짐과 계획들이 무쓸모 허상들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좋은남편 좋은아빠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꿀봉아. 아직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이거 하나는 미리 약속할게.
오늘처럼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꿀봉이가 원한다면 아빠는 회사도, 친구도 다 미뤄두고 꿀봉이와 함께 밖에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도 끌어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