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여행을 해야하는 이유

현실도피? 우리 방식대로의 재시작이다.

by 집사가 되고싶다

6년만에 찾아온 첫 아이를

유산으로 떠나보냈다는 사실은

우리 같이 젊고 어린 부부에게

너무 큰 슬픔이고 충격이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이야기 할 수도,

쿨한 척, 태연한 척 일상을 맞이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전.혀. 쉽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라고..

요새는 흔한 일이라고..

누구누구도 그랬다고..

그러니까 힘내라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부부에게 큰 힘이 되어줌과 동시에

그토록 피하고 싶은 사실이

절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주었다.


우리는 재시작 버튼이 필요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현실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첫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유럽여행 계획은

올스톱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지금

수개월 전 계획했던 그 여행의 중심에 있다.


이상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취소될 뻔 했던 그 여행을 되려

만.끽.하고있다.



2주, 16일 동안의 여행


감사하게도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를 이해해준

직장 동료들의 도움과 양해 덕분에


아내 몸이 회복되는대로 우리는

도망치듯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로마-킹스톤-코벤트리-레스터-마요르카

그리고 다시

런던-파리

10일동안 7번의 숙소가 바뀔 정도로

웬만한 여행사 패키지 일정보다

더 빡빡한 스케줄.


하지만 그게 좋았다.

아니, 그런게 필요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금도 나태해질 수 없을만큼,

슬픔이 끼어들 틈 하나 없을만큼,

타이트한 여행이었으니까.

하루는 수백년 된 교회와

폭격을 맞고 폐허가 된 성당을 찾고,

또 하루는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축구 경기장에 가서

그들처럼 소리 지르며 경기를 관전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예상치도 못한

친구의 꽃다발 선물에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았고


우여곡절끝에 다시 찾아간 마요르카에서는

평생 잊지못할 호강도 누렸다.


하루하루 여행 속에 파묻혀

일상과 단절되려고 발버둥쳤고

두 손 꼬옥 잡고 리프레쉬를 외치며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우리의 그 계획은

정신없이 잘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창 밖을 바라보던 아내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봤다.


괜찮냐는 질문에 아내가 답했다.

몰든이가 생각나서 눈물이 났어..
나.. 계속 울어도 될까?

현실이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부끄럽지만

지난 밤, 나 역시도

그동안 아내 몰래 적었던 몇 편 안되는

태교 일기를 보면 눈물을 훔쳤다.


현실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한국에서 8,000km 떨어진

런던에 있다고해서


저 멀리 한국에서 있었던

슬픈 현실과 단절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회피하고 싶었던 그 현실을

조금 덜 생각하게 되고

조금 덜 슬퍼하게 되고

조금 덜 민감해질 뿐.


그러다가 조금씩 익숙해지겠지.


그리고 우리의 일상도 다시 예전처럼

다시 그 유쾌한 모습으로 돌아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 아빠로,

새로운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겠지.



여행을 떠난다고해서

현실이 달라질 건 없다.


현실은 늘 그렇듯

조금도 흐트러지지않고

그냥 그대로. as it is.


다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져서 돌아오겠지.


그러고보니 마침 오늘이

결혼 6주년이 되는 날이다.


꼬마신랑 꼬마신부로 결혼했던 우리가

이렇게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하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듯,


이번 여행이 끝날 때 즈음

우리는 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안고 돌아가겠지.


늘 그렇듯

그 때도

우리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


슬플 땐 한 없이 울고

기쁠 땐 눈물나게 웃고!


몰든이는 가슴속에 따듯하게 담아두고

다시 우리 방식대로의

재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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