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똥' 하나에 울고 웃은 3일

초보 아빠엄마 인증

by 집사가 되고싶다


내용 중 인턴으로 명시했던 부분을 '의사'로 수정했습니다.


두번 다시 '똥' 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

스스로 다짐했다.


아마 베테랑 엄빠들이 이 글을 보면 코웃음 치거나 반대로 과거 초보 시절을 생각하며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3일 만에 변을 봤다. 3일 만에 똥 한번 싼 걸 가지고 작가 호칭을 듣는 브런치에 글을 적냐고? 물론이다. 나는 적어야겠다. 이 피말렸던 3일에 대한 기록을. 내 브런치가 #육아 #임신육아 관련 카테고리에 들어가있다면 이건 적어야겠다.




며칠 전,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평소 칭얼대거나 "엄니!! 수유!!!" 를 외치는 울음이 아니라 말그대로 자지러지게 울었다. 어르고 달래고 안고 마사지를 해줘도 소용이 없었다. 젖병을 물려도 소용이 없었다. 한달이 조금 넘은 신생아. 우리는 이제 한달이 조금 지난 노란딱지 극초보 부모.


평소 1일 2-3회의 변을 보는데, 하루종일 변 소식이 없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한밤중에 내 자식이 허리가 휘도록 울고 있다. 그런데 그걸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을 때의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는 밤 10시가 넘어 응급실에 갔다. 집에서 8km. 차로 15분거리. 밤길을 조심히 천천히 빠르게. 가장 어려운 운전이었다. 차 안에서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해 접수하고 대기할 때에도 아기는 울지 않았다. 심지어 잠들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다행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그건 응급실로 출발할 때와 다른 걱정이었다.


여긴 우리 아기가 있을 곳이 아니다.


무슨 뜻이냐.

평일 밤 11시의 응급실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곳의 분위기가 대충 떠오를 것이다. 구급차가 수시로 드나들고 누군가 실려 들어온다. 대기실은 극도로 예민한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하고 '친절함', '따듯함'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직원들. 그리고 순서가 되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면 제각기의 사정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응급 환자들. 바쁘 움직이는 다수의 간호사와 의사들.


그 혼돈 속에서 우리 아기가 세상 온화한 표정으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아기가 이동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은 아이에게 쏠리 수 밖에 없다. 1개월짜리 신생아가 밤 11시에 응급실에 들어왔는데, 세상 고요하게 잠자고 있다. 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이곳에 와있을까.





어린이 응급


응급실 내에 영유아 환자와 보호자만 들어갈 수 있는 격리된 공간이 있었기에 다행히 우리는 조금 덜 시끄럽고 분주한 상황에서 대기할 수 있었다. 한참을 지나 한 의사분이 아기를 체크하러 들어오셨다.


슬리퍼를 벗어 자기 맨 발을 손으로 벅벅 긁고, 그 손을 또 옷 속에 집어넣어 긁다가, 컴퓨터 키보드를 치던 그 의사. 입을 떼기도 전에 어떤 말을 할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분은 곤히 잠든 아기가 뭐가 문제이냐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말을 꺼냈다. 그 말투, 그 질문이 불편했지만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상황을 설명했고,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그리고 또 한참의 대기 시간 뒤 다른 의사분이 들어오셨다.


"아기 배에 가스가 너무 많이 차 있어요. 가스가 복부를 압박해서 통증이 있는 것 같아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관장이나 수액을 맞아야 하는데, 너무 갓난아기라서 지금 그 방법은 추천하고 싶지 않고, 내일 날이 밝으면 외래진료를 받아보세요."


그랬다. 일단 다행이었고, 이단으로 뭔가 허무했다. 저 말을 끝으로 우리는 응급실을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날 밤 아내는 거의 한잠도 자지 못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겉으로는 자고 있었지만, 자는 내내 아기의 숨소리가 귀에 들렸다.




다음 날, 우리는 망설였다. 외래 진료를 받아볼까. 아니면 아기의 방귀와 변 소식을 기다려볼까. 검색을 통해 주변 소아과를 확인하고, 맘카페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봤다. 이게 그닥 좋은 방법이 아닌 건 알면서도 당장 가장 빠르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인터넷 검색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우리는 하루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 날 유난히 아이와 많이 놀았다. 소화에 좋다는 마사지와 다리 운동을 자주 해주고, 아기 표정이 조금이라도 일그러지면 기저귀를 들춰보곤 했다. 8시간동안 기저귀 속을 확인한 횟수만 서른 번은 넘은 것 같다.


아내는 아기 장에 좋다는 분유를 알아보며 분유를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내가 선천적(?)으로 바보같은 장을 가지고 있어서 유당분해를 하지 못한다. 내가 이런 멍청한 장기능을 유전자에 태워 아기에게 물려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너무 미안하다.




아들.

네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모습을 볼 때 마다 아빠는 미안하다. 그리고 강하게 다짐한다.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살고 후회없이 살아서 너와 엄마, 우리가 함께 살아갈 날들이 조금 더 편안해지게 만들겠다고.


그러니 지금처럼 건강하게 우리 곁에서 생긋 웃어주렴. 그거면 충분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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