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추억에 갇혀있으면 안돼.
일비린내 나지 않는 아빠와 남편이 되기 위해 아둥바둥 살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50일동안 모든 순간을 내 손과 눈으로 직접 느끼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회사에 긴 휴가를 냈다. 그리고 그 긴 휴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의 +1일부터 50일까지, 나는 온몸에 베어있던 일 비린내를 지우고 육아에만 전념하기 위해 노력했다. 육아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러고 싶었고 그렇게 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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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한번 깜빡 했더니 나는 '일' 이라는 통조림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팔을 걷어부치고 '일' 통조림 속으로 다리 하나 몸통 절반 정도 걸치고 있었다. 통조림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건지,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는지 확실치 않지만, 어쨌근 위태로워보였다.
하루 18시간 아이와 함께 하는 50일간의 육아를 마치고 다시 직장에 복귀했을 때 나는 힘들었다.
Q1.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는 말인가요?
A1. 물론이다.
Q2. 심리적으로도?
A2. 물론이다.
Q3.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A3.
내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부족한 잠이나 회사업무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 육아를 하고 싶었다. 집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하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퉁퉁 부어서 바둥거리고 있는 제비새끼 같은 아기를 안고 거실로 내려와 아침 햇살 받으며 수유를 하고 싶었고. 수유 후 아기가 잠든 사이 빨래와 설거지, 아기용품 정리 등의 집안일을 하고 싶었고. 아기가 칭얼대면 3초만에 달려가서 되도 않는 아재스타일 애교를 부리며 아기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새벽 육아를 담당하고 잠든 아내가 깨어날 때 즈음, 아내를 위한 점심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점심을 먹으로 내려온 아내에게 오전동안 내가 아이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고 싶었다.
지금도 변함없다.
50일의 육아를 마치고 직장으로 복귀한 지 50일이 훨씬 지났다.
나같은 직장인들은 그렇다. 긴 휴가를 다녀오면 그 휴가를 되새김질 하며 다음 휴가가 올 때까지 남은 일상을 버틴다. 나에게 그 긴 휴가는 50일 동안의 육아이자 집사 노릇이었다. 너무나 그리운 그 시간들.
50일의 휴가동안, 나는 24시간 전부를 나 자신과 아내, 그리고 아기와 고양이를 위해 사용했다. 주어진 24시간을 티끌하나 없이 다 소진하고 다시 다음날 충전되는 시간도 후회없이 먼지하나 남지 않도록 소진시켰다. 나의 행복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그런 시간이 또 올 수 있을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에게는 똑같은만큼의 시간이 충전된다. 그런데 그 100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확실치가 않다. 무언가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건 확실하다. 직장에서도 내 몫을 다 하기 위해, 남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물론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한 노력.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한 에너지 소비. 그런 건 하지 않는다. 내몫을 다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남은만큼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아내와 아이를 위해 불태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나는 잘 모르겠다. 나의 24시간이 어떻게 나뉘고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
너무나 그리운 50일의 육아. 그런 시간이 또 언제 올까. 나는 오늘도 지난 50일의 추억을 되샘김질 하고 있다.
그리고 문득.
오늘도 떠오르는 생각.
아내가 그립다. 그리고 나도 그립다.
우리 잘해봐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리 셋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