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시티 vs 토트넘 경기 직관
잉글랜드로 여행을 떠나는 한국 사람들 중
'레스터에 가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레스터는 영국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살면서 레스터라는 도시에 여행을 오게 될 줄이야.
사실,
우리는 런던 -> 코벤트리로 여행중이었는데
여행 일정 중, 토트넘이 레스터로 원정 경기를 온다는 사실을 알고 이튿날 기차를 타고 레스터로 향했다.
경기 티켓을 구하지 못한 채 경기는 스타디움 근처 펍에서 보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끝날 때 즈음 어웨이 선수를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향할 계획이었는데,
절대 포기란 모르는 아내의 끈질김 덕분에
킥오프 40분 전, ticket exchange 사이트에서 아주 운 좋게 홈팀 티켓을 구할 수 있엇다.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했던 팀 답지 않게 경기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2부와 3부를 오고가는 런던의 밀월FC 정도의 크기랄까.
아무래도..첼시나 아스날처럼 꾸준한 실력과 관중 동원이 보장되지 않는 팀이라는 현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기장 증축이라는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았겠지.
나름 꽤 많은 경기를 직관했는데 이곳은 유난히 보안, 경비가 심했다. 가방 검사는 기본.. 주머니까지 뒤지며 혹시나 모를 테러에 대비하는 모습.
마음이 여린 우리는 행여나 티켓 익스체인지로 구매한 티켓에 이상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줄을 섰지만,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통과했다.
입장 전부터 아내는 경기장 밖에서 파는 더 맛있고 더 알차보이는 햄버거를 원했지만 나는 경기장에 무사입성 후 여유를 즐기자고 했다.
그런데 웬걸,
레스터시티 홈구장은 햄버거를 팔지 않았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대신 핫도그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요상한 빵덩어리와 맥주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배가 따듯해지자 우리는 손가락이 근질근질 해졌다.
배팅을 즐겨했던 우리의 손가락은 BET ZONE 앞에서 꼼지락꼼지락 거렸지만, 이번엔 참기로 했다.
이유는,
너무 오랜만에 영국식 배팅을 하려다보니
감이 떨어져서. (응?)
킥오프 시간이 다가오자 홀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고 간간이 일본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 오카자키 신지를 응원하러 왔겠지.
내가 레스터까지 온 일본인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듯이, 그들 역시 선발 여부가 확실치 않은 손흥민을 보러 레스터까지 온 한국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았을까.
드티어 경기장 입장.
킥오프 40분 전에 극적으로 구매한 티켓 치고는 자리가 나쁘지 않았다. 한 가지 흠이라면 레스터 홈 좌석이라서 토트넘이 뭔가 장면을 만들어 낼 때마다 들썩들썩 꿈틀꿈틀 거리는 엉덩이와 자꾸만
머리로 향하는 양 손을 주체하기 힘들었다는 점.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레스터시티 홈팬들은 응원을 정말 못한다.
안하는게 아니라 못한다에 가깝다. 물론 경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이 날은 어떤 응원가도 10초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반면, 반대편의 토트넘 원정석의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영상)'역시 응원은 원정이지!' 라는 법칙?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종료 휫슬이 울리자마자 어웨이버스가 대기하는 곳을 찾아 나섰다. 처음 오는 경기장은 늘 이게 고생이다. 당췌 버스가 어디서 대기하는지 모르니
스튜어드에게 물어보며 넓은 경기장 주변을 빙빙 돌아야하는 번거로움과 불확실함.
손흥민 선수는 경기 후 늦게 나오기로 유명하다.
락커룸에서 찬물 샤워를 하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스트레칭을 한 뒤 나오기 때문이라는 걸 기사로 접한 적이 있는데, 암. 그럼. 그럼. 선수는 무엇보다 몸 관리가 최우선이지 않는가.
춥디추운 날씨 속에서 우리는 양발과 등, 배에
핫팩을 4개씩 붙이고 그렇게 한 시간을 기다렸다.
정말 춥고 다리가 아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소중한 추억이다. 이 순간을 기대하며 레스터까지 왔는데 그까짓 추위와 피곤이 무슨 대수랴. 게다가 의외로 우리 말고 손흥민을 기다리는 한국인이 몇몇 더 있었다. 젊은 커플, 그리고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들도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온 손흥민.
다른 선수들은 추위에 떨며 그들은 기다려준 팬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따듯한 버스로 들어가버렸지만,
손흥민은 달랐다.
그를 기다려준 어린 아이들과 먼저 사인과 사진촬영을 하고, 그 추운 날씨에 저지 하나만 입은채로 우리를 포함한 다수의 무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잠깐만 서 있어도 손과 귀가 빨개지도록 추운날씨였는데..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는 레스터라는 낯선 곳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