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추억팔이라는 걸 한다옹
어느덧 영국에 다녀온지 2년이 됐다.
처음에 집사녀석들이 나는 한국에 두고 자기들끼리 먼 곳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느꼈던 그 충격과 배신감과 슬픔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그래도 우리 집사들이 나쁜 인간들이 아니라서, 나를 영쿡이라는 곳에 데리고 가기 위한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더랬고, (인간들 돈 개념은 잘 모르겠지만 수백 썼다고하는데, 그정도면 사료 몇봉지냥?) 우여곡절 끝에 나는 비행기라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불쾌한 물체를 타고 영국을 가게 됐다.
그냥 놀았지.
영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고양이가 영국에 간다고해서 뭐 딱히 할 게 있겠냐옹. 매일같이 창가 앞에 널부러져서 그루밍이나 좀 하다가, 아.. 그래 영국은 참 햇살이 좋았더랬는데..
하루에 한 두 번씩 영쿡 냥이들이 문안인사 오면 잠깐 나가서 수다나 좀 떨고. 제발 한 번만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하면 잠깐 밖에 나가서 발라당 시전해주고..
사실 내가 발라당 쉽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아무래도 외쿡에 나가서 살다보니 그 지역 냥이들하고 좀 친해질 필요도 있었고, 또 뭐 내가 저렇게 하면 쟤네들도 옆에 와서 발라당발라당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아스팔트에 등 부비적 거릴 때의 그 짜릿함. 그 감촉. 그 시원함은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가끔씩 집사녀석들이 그루밍솔, 이상한 실리콘 빗 같은 걸로 내 등을 긁어주긴 하지만, 그 애매모호하고 인위적인 작은 물체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아스팔트의 손길..(아..냥그립)
지금 떠올려보니 영쿡이란 곳은 나같은 냥이들이 살기에 아주 최적화된 곳이었다라는 생각이 든다옹. 비록 내가 한국에서는 야외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지만, 듣기로는 한국의 길냥이들은 아주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던데.. 영국은 길냥이 집냥이 따로 구분이 없는듯 했다. 집에서 뒹구르르 거리다가 심심하면 창문 밖이나 캣도어를 통해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는 게 영쿡 냥이의 삶.
그러다가 춥고 배고프면?
그럼 다시 따듯한 집에 들어가 집사 옆에서 좀 부비적 거리면 알아서 먹거리를 챙겨준다하니.. 그립구나. 매일 아침 내집 창문 앞으로 나를 찾아오던 그 때 그 친구들은 건강히 잘 살고 있는지..
집사야. 우리 다시 영쿡 안가냐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