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부, 서울을 떠나 타운하우스로_8
작년 겨울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큰 맘 먹고 3kg정도 되는 수제 파스타기를 사왔다.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매주, 각기각색의 파스타 면을 뽑아서 파스타 파티를 할 것만 같았는데.. 현실은 반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박스를 뜯어봤다는..
박스를 열어서 부속품을 확인해보니 이게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바로 이해가 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사용하기 전이었으니.. 성능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비주얼은 햅격.
잘빠진 고급 세단 or 에이리언에 나오는 주인공 이빨 같아 보이기도 하고..
눈알만 두 개 붙여 놓으면 WALL-E에 나오는 깡통 로봇 같기도 하고..
아내가 반죽 준비를 마치고,
내가 반죽을 해보기로 했다.
근데 웬걸.. 불길한 예감은 틀린적이 없다더니..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반죽하는 순간부터 폭망각이 넘쳐났다.)
그런데, 어쩌면 당연한 게 우린 한 번도 집에서 파스타 면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내님 괜찮습니다. 전부 다 이해합니다.)
일단 폭망할 것 같다는 불길함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반죽했다.
쉐프님의 오케이 사인이 날 때까지 반죽한 뒤 냉장고에 휴지 시켜두었다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꿀잠에 빠진 반죽을 다시 깨웠다.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2 (휴지 시간이 너무 짧지 않았나...)
그런데, 어쩌면 당연한 게 우린 한 번도 집에서 파스타 면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내가 내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다...)
불길함에 불안함을 얹고, 잘 빠진 파스타 머신 속으로 반죽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수동 레버를 빙빙 돌리는데.. 마치 마법처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걸로 마술쇼 같은 거 해도 될 뻔..
어라? 이거 불량인가?
처음에는 우리 둘 다 기계를 의심했다.
그래서 다시 반죽을 하고나서 기계에 조심스레 밀어넣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마술쇼.
또 다시 반죽을 하고, 또 다시 마술쇼를 보고, 또 다시 반죽을 했다.
(인터넷에 반죽 레시피 있다없다?)
세 번까지는 둘다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반죽과 마술쇼를 반복했다. 그런데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 가까이 흐르자..이게 히히깔깔 거리면서 밤새도록 할 순 없다는 걸 깨달았고, 우리는 결국 끈적끈적한 반죽이 가득 고여있는 기계를 물 속에 쳐박아 뒀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걸 왜 물 속에 넣었지??.......-_-a)
기계를 물 속에 넣어두고, 둘은 또 신난다고 깔깔거렸다. 그리고 이왕 반죽도 만들었으니 손으로 면을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의견에 도달했고. 우리는 각자 R&R을 정했다.
아내: 면 말아서 칼로 자르기
나: 롤처럼 말린 면을 길게 펵서 차곡차곡 모아놓기
이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진작 이렇게 해서 먹어볼껄!!
신나게 반죽을 만들고 펴고 만들고 펴는 과정을 반복해서 둘이 먹기에 충분할 만큼의 페투치네 면을 뽑아내고, 미리 만들어둔 비프 소스에 버무리기 전에 끓는 물에 삶았다.
내가 기억한 마지막 소요시간은 한시간 반 정도 였고, 그 후로 얼마나 더 흘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파스타면을 직접 만들어서 면부터 소스까지 100% 핸드메이드쿡을 해보기로 했고, 결과적으로는 기계의 힘도 빌리지 않고 우리 손으로 수타면까지 만들었으니 파스타의 맛이 어떨지에 상관없이 우리의 만족감은 극에 달했다.
사진에 잘 나오진 않았지만, 우리는 (아내는) MINCE MEAT 대신 소갈비살을 식감 좋게 잘라서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치즈가루를 치즈치즈하면서 풍부하게 뿌려주고나니..
쨔잔!
세상에. 이렇게 맛 좋은 파스타는 처음 먹어봤다. 사실, 한국의 칼국수 면처럼 넓게 만든 파스타는 처음 먹어봤는데, 이 면발의 식감이 그렇게 익숙하고 쫄깃하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표현을 못하겠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성공했다.
비록 영국에서 힘들게 공수해 온 존멋 파스타 기계는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우리가 함께 반죽하고 손으로 펴서 만든 파스타면과, 아내가 직접 만든 푸짐한 소스로 세상 맛있는 파스타를 함께 만들어 먹었다는 게 나에겐 훨씬 더 의미있다.
아내님!
우리 또 언제 파스타 만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