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함을 떠나 '낯선' 복잡함 속으로

서울만큼이나 복잡했던 도시를 찾아가다.

by 집사가 되고싶다

20대 후반.

직장인으로서 남들과 비슷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 자신도 분주한 러쉬아워 속의 일부라는 '어린' 자부심이 조금씩 사그라들 무렵, 매일마다 번잡한 출퇴근 길을 기계적으로 오가며 늘 했던 생각이 있다.


'아.. 하루라도 나는 이 번잡함 속에서 벗어나, 이 눈 따가운 광경을 유유자젹 지켜보는

제 3자가 되고 싶다..'


물론,

평일에 하루 휴가를 내고 출근 시간에 맞춰 서울역이든 강남역이든, 신도림역이든 사당역이든

서울 시내의 가장 복잡한 지하철역을 찾아가기만 해도 그 생각을 실현할 수 있을만큼 쉬운 일이었지만,


황금같은 휴일 아침부터 옷을 갈아입고 지옥철과 콩나물 버스를 타고 이동해가며 그 숨막히는 광경을 지켜보러 밖으로 나가겠다는 마음을 먹는 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국내에서의 나의 휴일은 절대 건드리지 않기로 하고 어딘가 밖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 나라, 그 도시 사람들의 러쉬아워 중심에 들어가서 그 분주함과 가장 부적합한 존재가 되어 보자는 이상한 계획을 세웠다.


익숙한 복잡함을 떠나 '낯선 복잡함' 속으로 들어가보자.




Asia


-JAPAN-

batch__MG_7030.jpg @Shinzuku Station, Tokyo, Japan

'낯선 복잡함'을 찾아 떠났다고 하기엔 신주쿠 역은 서울과 너무나 비슷한 곳이었다.

역 앞 광장부터 개찰구, 플랫폼, 심지어 전철 내부 모습까지도.

batch_IMG_7009.jpg @도쿄의 어느 전철 안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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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대의 모습 역시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횡단보도 앞에 차곡차곡 쌓이듯 멈춰서는 발걸음. 그리고 퇴근 후에도 '놀' 에너지가 남아있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화려한 네온사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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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서울과 비슷했지만, 딱 한 가지 다른 점은..


내가 이 곳에 속해있지 않은 '자유로운' 이방인이라는 사실.


다음 날 아침 알람벨 소리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러쉬아워의 일부가 될 필요 없이

한 발 살짝 옆으로 물러나 그들의 분주함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



VIETNAM - CAMBODIA -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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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쉬아워 이야기와 별로 상관 없지만..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묘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2009년 사서 고생하는 노숙여행을 해보겠다는 이상한 목표를 가지고 인도차이나반도로 떠났다가 사기를 당하고 납치(?) 같지도 않은 납치를 당했던 기억이 짙게 남아있는 도시 하노이.


그리고 3년 뒤 출장으로 다시 찾아갔던 하노이의 중심 호안끼엠 호수 주변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직장인' 신분으로 찾아온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그대로였다.


특히, 출근 길 아침 도로 신호가 바뀌는 순간 사방의 골목에서 쏟아져나오는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폭풍러쉬 같은 행렬은 하노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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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대표적인 관광지 앙코르와트가 있는 프놈펜 지역만 가보고서 그들의 러쉬아워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조금은 억지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그곳에서 보았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넓게 포장된 도로위에 달리는 자동차는 관광객들을 가득 싣고 이동하는 여행사 버스가 대부분이었고

현지 주민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 같은 수단으로 출근길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러쉬아워는.. 낯선 분주함이 아닌 그냥 '낯설음' 가득했던 기억.






Europe


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며 낯설음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경험을 했다면 유럽에서 '감상한' 러쉬아워는 아시아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듣는다면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서울과 도쿄, 베트남에서 접했던 획일적이면서 동시에 무질서한 분주함은 아니었다.


batch_폴란드.jpg @people on a tram - Krakow, Poland
batch__MG_4577.jpg @비 내리는 퇴근 길 저녁 - Salzburg, Austria
batch_체코 프라하.jpg @퇴근 길, 트램 정류장 - Praha, Czech
@London Bridge Station - London, England
batch__MG_4036.jpg @낯설지 않은 퇴근 길 고가도로 - Wien, Austria

물론,

퇴근 길 도로 위로 쏟아져 나온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교통체증 현상은

어느 나라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동유럽의 한복판에서 체험한 퇴근 길 교통체증은.. 내가 타고 있는 차를 둘러싼 수 백대의 차 사이에서 괜히 반가움을 주는 국산 브랜드 차를 찾아보거나,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다른 차종을 찾아보는 소소한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익숙한 모습


그렇게 많은 나라, 다양한 도시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들의 러쉬아워를 혼자 감상하고 지극히도 사사로운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며 즐거워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너무나 익숙해서 다시 벗어나고 싶은 분주함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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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있다... 라는 표현 보다는 '그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라는 표현이 더 좋아보일까.


그 일부가 된 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회사로 출근하고 집으로 퇴근하는 그 분주함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비행기 창가석에 앉아 비행기 날개 아래 펼쳐진 하늘을 내려다보고, 지상에서 보기 힘든 알라딘 구름쇼를 감상하며, 저 멀리 외국 어딘가의 카페에 앉아 모닝 세트를 즐기며 그들의 러쉬아워를 감상하는 나의 모습.


나에게는, 이방인이 되어 남들의 러쉬아워를 유유자적 감상하는 모습이 소소한 즐거움이 되듯

내가 타고 있는 버스나 지하철 속, 함께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옆의 누군가도 마음 속에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목표하고 기다리고 기대하는 그들만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2017년,

나에게 그 D-day는 언제가 될지. 아직 보이지 않는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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