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되지 않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모처럼 3시간동안 오롯이 나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무엇을할까. 무얼 하면 좋을까. 순댓국 & 카페, 사우나, 한강, 낮잠, 영화, 걷기, 부모님, 친구, 쇼핑, 유튜브.. 등등등등등. 정말 많은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 소중한 3시간이 시작되기 7시간 전, 나는 결정했다.
계획되지 않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거나 적고 싶다.
얼마 전,
인생 첫 사진전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내가(내 주제에), 내 이름을 건 사진전이라니.. 결혼 전에는 늘 카메라와 함께 했던 나의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꿈. 집안 곳곳에 내가 찍은 사진액자를 걸어놓는 걸로 만족하고 살아왔는데. 결혼 8년째 되는 해, 아내는 그동안 내가 찍어뒀던 사진들을 모아 한달 동안 한땀한땀 선물을 준비했고 나는 아내에게 깜짝 사진전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사진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성공적이었던 그날 이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나에게 지난 일주일은 기존에 보내던 7일 이라는 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의 연속이었다.
생기. 왠지 모를 에너지가 넘쳤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진전 당시의 순간순간이 떠올랐고, 그 순간의 떠올림 속에는 늘 지인들의 반가운 얼굴, 미소짓는 모습, 고마웠던 인사, 기분 좋았던 웅성거림, 그런 생기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또 다른 순간의 떠올림은 나를 사진전 액자 속에 걸려있던 장소로 안내했다. 시간 여행. 추억 여행. 현실에서의 탈피. (사진전의 주제가 세계여행이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에게 그 날의 경험은 특별했다.
적어도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 내가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고, 나는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나누어야 했고. 그러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줬고, 나는 그것을 듣고 어떻게든 반응을 해야만 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수십명의 사람들과 나눈 수십가지의 다른 대화.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와 입에서 느껴지는 진심어린 감사한 마음. 그 모든 순간들의 되새김이 나의 일주일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지난 일주일 간 나는 매일 여행을 떠났다.
나에게는
근 10년 가까이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꿈 이라는 것. 목표. 꿈. 그러고 보니 "너는 꿈이 뭐니? 너는 목표가 뭐니?" 라는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니 신입사원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저런 종류의 질문을 꽤 자주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는데.. 지금은, 지금은 그런 시기인가보다. 주변의 다른 누구의 꿈이나 목표 따위에 관심갖지 않는, 관심이 있어도 물어보고 싶지 않은, 또는 미세먼지 가득한 날 남산타워의 실루엣처럼, 나의/누군가의 꿈이나 목표가 '현실에서 해야하는 것들'과 명확히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에, 굳이 추상적이고 낭만감 충만한 저런 단어를 언급할 필요가 없는. 꿈이나 목표, 그런 걸 잊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건조한 시기.
어쨌든,
나에게는 근 10년 가까이 절대 변하지 않는 꿈과 목표가 있다. 나의 꿈은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그림 그리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 단조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분과 나무에 적당히 물을 주고, 테이블에 앉아 따듯한 커피와 빵 한조각 오물거리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얼굴 전면으로 따듯한 햇살을 듬뿍 받아들이고 난 뒤, "자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캔버스가 됐든, 랩탑이 됐든 어떤식으로든 그 날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것. 그렇게 한 두시간 가량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잠에서 깬 아내가 고양이 처럼 슬쩍 다가와서는 "으응, 오늘은 이거 하는거야? 아침 먹었어? 또 빵먹었지? 우리 점심에 고기 구워먹을까?" 라고 말하고는 부시시하고 귀여운 뒷태를 보이며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 (사실 결혼 전까지는 이 장면에 나와 고양이 한 마리만 등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에 저것보다 고독하고 외로운 장면이 또 있을까.)
결혼 뒤 조금 수정되긴 했지만, 이게 10년 가까이 변하지 않는 나의 목표이자 꿈이다.
생각만해도 행복하다. 생각만해도 행복하고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모습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최선을 다해 좇아야 하는 꿈과 목표가 아닐까.
물론 저런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을 여러 개 갖추어야 한다. 1년 365일 아침부터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곳. 최소한 한반도에는 그런 곳이 없다. 바다 근처에 위치한 단독주택에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와 아내는 수준급 DIY 실력이 있어야하고, 내멋대로 창작활동에 대한 결과적, 금전적 부담이 없어야 한다. 뭘 만들어내든 판매가 가능한 금뇌금손다이아몬드인맥이 되거나, 3만원짜리 캔버스에 줄 하나 긋고 "자 이번 작품은 여기까지!" 라고 외치며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놓거나 그날 점심 장작으로 사용할 만큼의 경제력. 그리고 가장 필수적인 것은, 무엇보다 아내와 나 모두 건강해야겠지. 지금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며 몸도 마음도 뽀송뽀송 건강한 사람.
자식이나 그 밖의 가족, 대인관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것들이 개입하는 순간 '현실' 이라는 잡것들이 개입하게 될테니까. 꿈과 목표를 가지고 싶다면 그것은 정말 꿈과 같은 목표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에 이걸 추가하고, 뭔가 찝찝한 마음에 저것도 쑤셔넣게 되면, 결국 얘도 넣고 쟤도 고려하게 된다. 약해진 마음으로 하나하나 추가하다 보면 나를 위한 꿈과 목표가 아닌, 내 주변의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허상같은 꿈만 남게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