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나요, 영화를 좋아하나요?"
누군가 내게 물으면 난 별 망설임 없이 '책이 좋아요'라고 말할 것 같다. 만약 같은 작품을 책으로 보겠느냐, 영화로 보겠느냐 라고 물으면 잠깐 망설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책을 선택할 거다. 이유는 별 거 없다. 책에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할 수 있다는 여지.
난데없이 책과 영화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얼마전 다녀온 전시회 때문이다. 안국동에 위치한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여는 특별전시회. 바로 '금기숙 기증특별전' 이다.
옛 풍문여고 터에 위치한 서울 공예박물관. 옛 고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재활용한다는 것부터 무척 친환경적인 곳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 곳이다. 풍문여고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학교 건물의 느낌은 이 건물을 즐기는 하나의 재미다. 아마도 운동장이었을 공간인 널따란 정원도 눈길을 끈다. 초록초록한 이 정원은, 이 빽빽한 도심에서 시각적 여유를 부릴 수 있게 하겠지. 어떻게 찍어도 별 게 없는 정원에서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되는 건, 바로 이 호감 때문일 거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경기도민인 나에게 한나절 나들이 코스로 좋은 곳이다. 집에서 버스 한번이면 도착하는 곳이니, 그 곳에서 여는 전시를 늘 눈여겨 보게 된다. 그런데 반짝이는 드레스라니. 놓칠 수 없지. 그 아름다움에 반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전시를 여는 드레스는 이 전시회의 백미였다. 이만큼 눈길을 끌기도 어렵겠다 싶다. 가는 철사와 스팽글로 만든 새하얀 드레스라니. 까맣게 어두운 공간에 스팽글에 반사된 빛이 스스로 발광하는 전구처럼 느껴져 반짝임이 배가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한복의 저고리와 두루마기 등등. 반짝임이 주는 시각적 만족감에 이 전시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는 이미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그저,
'시각적 만족도 최상'
그래도 옷은 옷인데 또 옷은 아닌, 대체 이 작품은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증이 일긴 했다. 패션쇼장에 있어야 할 작품들이 박물관에 있다니. 그래고 또, 내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건 무엇때문이지?
반짝임의 황홀함이 조금 잦아들 때쯤, 전시의 중간정도에 가면 이 궁금증이 풀리게 된다. 바로 2018년 2월에 열렸던 평창 동계올림픽. 92개국 선수단을 이끈 피켓요원들을 기억하시는지.
맞다. 그들이 입었던 옷이 바로 금기숙이 만든 옷이었다. 그 때 입었던 의상의 이름이 <눈꽃 요정>이라는데 이는 금기숙이 개척한 패션아트로 한국적 조형미를 현대감각으로 구현한 대표적 사례라고 한다. 아마도 족두리의 스팽글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데 그 떨림과 흔들림으로 눈꽃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입기 위한 예술', '와이어 조각'은 그렇게 작가의 작업에 새로운 미적 세계를 열었다고 한다. (전시 설명에서 참고했습니다.)
전시 설명은 그랬지만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예뻤다. 가느다란 금속으로 직조한 입체 드레스. 그것도 반짝이는 모양을 하고 춤을 추듯 날아가는 형상을 보자니 어느샌가 마음속에 몽글몽글 소녀감성이 튀어나올것만 같았다.
그 때 그 생각이 든 거다. 상상의 힘.
이 드레스가 아름다운 건, 사람이 입고 있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는 것.
공중에 걸려있는 그대로, 날아가는 모습인 듯 춤을 추는 모습인듯, 가느다란 철사로 이어붙인 그 유연한 조화가 나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으므로.
관객이 상상할 여지를 남겨둔 작품이었다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하고도 특이한 장르, 금기숙의 패션아트는 어쩌면 '사람'이라는 여백의 미가 공간에 가득 넘치는 세계를 꿈꾼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