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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지 Dec 13. 2020

달리기가 왜 좋은 운동인지 아세요?

마음의 여유를 찾아준 운동, 체력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올해 유난히 꽃같은 가을, 10월이다. 코로나로 세상은 여전히 흉흉하고 지난 네 개의 계절 또한 숨죽여 지나갔지만, 그래도 코로나로 인해 청명한 가을하늘을 실컷 누릴 수 있었던 건 또다른 선물이었다. 하늘이 맑아서인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조차도 쓸쓸하지 않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오늘은 자전거를 탔다. 내가 자전거를 타다니, 그것도 40여km를 3시간 안에 주행하는 놀라운(?) 실력으로.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들이거나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한 사람들에게는 우스워보일 수 있는 저 기록은 단언컨대, 내 생애 최고의 기록이다.


나에게 운동이라는 건, 늘 숙제같은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그렇게 정신없이 30대를 보내고 나니, 워낙에도 숨만 붙어있던 체력이 더 떨어질 곳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건강한 노년을 준비하기 위해 체력을 기르라고 성화이고, 오전에 아이들이 학교에 갔을 때 운동하지 않는 건, 일생일대의 죄악이라는 시선도 주위에 팽배했다.

그 시선에 못견뎌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등록한 헬스장. 그러나 나는 무거운 웨이트 트레이닝이 가능한 몸도 아니었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GX 프로그램도 숨이 헐떡거려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수영은 머리를 물 속에 담그는 순간 고막을 울리는 꾸르르륵 소리에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고, 필라테스는 재미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거다! 싶은 운동이 있었는데, 발레였다. 유아도 아니고 무슨 발레에 취미가 붙을 수 있나 생각하겠지만, 해본 사람은 모두 알 거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에 맞춰 '플리에, 포인, 바뜨망, 빠세~' 이런 우아한 이름이 붙은 동작을 하고 있는 재미를. 일단 느린 속도는 합격점.


그러나 발레에도 함정이 있었다. 전신거울을 향해 남들보다 뒤처지는 유연성과 도저히 뛰어지지 않는 점프. 해도해도 늘지 않는 실력에 이게 뭐라고 부끄러움까지 느껴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전신거울을 통해 낱낱히 드러나는 열등감은 늘 다음달 등록을 주저하게 했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로 학원들이 모두 문을 닫기 시작했고, 나는 운동에 대한 압박에서 해방되어 약간의 여유로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여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헬스장이 문을 닫아 좀이 쑤셨던 남편의 성화가 시작되었다. 공원 가까이에 살면서 공원을 뛰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그동안도 쭉 공원 옆에 살았는데, 왜 이제서야 공원을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튼 남편의 고집을 어찌 꺾으랴. 나는 또 따라 뛸 수밖에.


처음에 달리기를 할 때는 인간의 한계가 느껴졌다. 숨이 턱에 차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숨을 고르며 참고 참았다. 그렇게 걷기 반, 달리기 반의 5km를 끝냈을 때, 나는 다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을 따라 뛰지 않겠노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그 횟수가 한 번, 두 번 계속될수록 숨이 턱까지 찰지언정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지 않았다. 나중에는 상쾌함마저 느껴졌다.


겨우 5km를 달리면서 이게 바로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말하던 '러너스 하이'인가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리기는 전신거울이 없어서 좋았다. 달리는 동안 아무도 서로를 신경쓰지 않는 자유로움, 익명의 순간에 느끼는 혼자만의 성취감.


그런데 달리기의 효과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바로 체력의 변화였다. 나는 늘 바닥을 뚫고 내려간 체력으로 살았던 터라, 일상이 매일같이 깔딱고개였다. 매일매일 남들 하는 만큼 집안일을 하고 밥을 하고 아이를 키웠을 뿐인데 매번 내 안의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야 그 일상이 가능했다. 게다가 운동을 하고 온 날엔 하루의 체력을 모두 소진한 듯 누워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한 후엔 뭔가 달랐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보태지면서 이쯤되면 넘어야 할 깔딱고개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신기했다. 신기하니 자꾸 달렸다. 달리면 달릴수록 나는 점점 깔딱고개와 이별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예전에 드라마 <미생>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예전엔 머리로만 이해했던 이 훌륭한 대사를 나는 요즘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달리기에 이어 자전거에 빠진 요즘, 나는 이 맑은 가을날씨를 만끽하며 페달을 밟는다. 온전히 나의 에너지로 달리고 그리고 온몸으로 맞는 가을바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비록 페달을 구르는 속도는 느리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펼쳐진 예쁜 자전거길, 둘레길을 누려보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산책로를 따라 넓게 펼쳐진 꽃들의 향연 또한 덤으로 주어지는 볼거리다.


마흔 넘어 매번 소풍 나온 기분으로 변해가는 계절을 온 몸의 감각을 총동원해 느껴보는 건, 생애 처음 지치지 않는 몸이 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된 덕분이다. 체력이 주는 소중함은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을 달라지게 했다.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늦지 않았겠지만 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또한 어떠리. 분노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 수만 있어도 참으로 선물같은 인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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