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아름다운 우리 고3이의 5월입니다.
우리 집에서 5월은 매우 특별한 달이다. 5월엔 남편의 생일과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알다시피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줄라라비 있어 5월은 특별히 금전적으로도 출혈이 어마어마한 달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요즘엔 김영란법으로 '스승의 날'이 빠졌으니 내겐 챙겨야 할 날이 하나 빠진 셈인데 , 아이들에게는 아니다. 물론 담임쌤이 어떤 쌤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좋은 담임쌤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유난하게 특별한 날이다.
고3인 큰 아이에게 다가오는 5월은,,, 그래서 내심 불안했다. 날은 좋아지지, 햇살은 따스해지지. 마음에 살랑 바람이 불 텐데, 그런데 하필 담임쌤까지 너무 좋다는 것 때문에. 게다가 우리 애는 반장인 걸! 어쩐다….!
올해 우리 큰 아이는 그야말로 담임복이 터졌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그야말로 잭팟이 터진 정도랄까. 우리 아이 12년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좋은 쌤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나 진부하고, 뭐랄까 무려 12년 동안, 그동안 지지리도 없었던 담임복을 한 번에 퉁쳐 받았다고 할까. 3학년 반배정이 나오고 며칠 뒤 담임쌤이 배정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무슨 일인지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만 아직 배정이 안되어진 상태였는데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도 학년이 학년인지라, 좋은 선생님이 배정되기를 빌고 또 빌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아이가 드디어 담임쌤의 문자를 받던 그 순간! 톡을 보던 아이가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엄마! ooo쌤이 우리 담임쌤이래!!"
"어?! 왜? 좋은 쌤이야...? 아니면 그렇게.. 별로야?"
우리 고3이는 그야말로 무표정하다. 그것도 유독 내 앞에서만 더욱. 그런데 그 딸이 핸드폰을 떨어트리는 감정표현까지 했으니 이건 분명 보통 일이 아닐 거란 예감이 운명처럼 스쳐갔다. 그러나 모든 일은 일단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예상하는 것이 충격이 덜한 법, 나는 당연히 나쁜 쪽을 선택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별로야?"
"아니~~~~!! 엄마엄마엄마 그게 아니고 어머어머어머 엄마, 이 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좋은 쌤이야!!!!!!!"
내 딸의 이런 호들갑은 단언컨대, 이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웬만한 선생님이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기에 나는 무슨, 이날, 사실,,, 대학에 합격한 것만큼이나 좋았다. 그렇단 말이지! 그래, 고3 시작이 너무나 좋다!!!!
그런데 꽃가마 탄 줄 알았던 그 길에 다음 수순으로 반장이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고3은 보통 반장을 안 한다고 들었는데? 아니 수시준비하는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아이처럼 정시를 목표로 하는 아이에게는 매력 없는 자리다. 아니 매력 없는 정도가 아니라 괜한 뒤치다꺼리로 신경만 쓰이는 자리가 아닌가. 고3에게 반장이란.
그런데 그 자리를 꿰찬 거다. 그것도 나서지 않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 딸이 말이다. 사연인즉슨, 아무도 손들지 않는 반장선거에 선생님이 SOS를 친 거다. 도와달라고. 야자가 필수인 고등학교인지라 잠만 집에서 잘뿐, 반기숙학교나 다름없어, 1학년때부터 우리 아이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딸아이를 콕 집은 거 같았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부탁을 하시는데 우리 딸이 거절했을 리는 만무하고, 그렇게 고3 반장이 된 딸이다. 학창 시절 내내 한 번도 안 해본 반장을 왜 하필 고3이 되어서 하는 건지. 그랬지만 처음엔 좋은 점도 많았다. 반장이라서 엄마 상담에서도 우선순위를 받았고, 아이에게 더 신경도 많이 써주셨다.
그런데 5월은 무려 스승의 날이 있는 달이 아닌가. 딸의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내신시험 기간이었는데 아무래도 내신준비보다 스승의 날 준비를 더 많이 한 느낌이다. 아이들에게 예쁜 쪽지를 건네 선생님에게 드릴 편지를 하나하나 받아서 롤링페이퍼를 꾸민 것은 물론, 꽃다발에 수제 레터링케잌까지 주문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짜잔.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너무나 해보고 싶었다며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나긴 했다. 여기서 끝나면 좋았을 것을. 5월의 마지막 날이 선생님의 생일이란다. 절대 그날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딸은 초코파이 케이크와 파티용 풍선과 회전초, 그리고 비눗방울 쇼까지 벌이며 신난 파티를 했단다. 그날 아침, 선생님께 씌워드린 고깔모자는 우리 부부가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빵집에 달려가서 공수해 온 것쯤은 공치사 안 하련다. 생파에 진심인 딸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요란했던 5월이 막을 내렸다. 제 딴에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영상을 계속 돌려본다. 그렇게 우리 고사미의 5월은 딸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 부부에게도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물론 어버이날과 남편의 생일과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딸아이의 축하 없이 지나갔지만, 어쩌겠나. 아프니까 청춘이고 그러니까 고3인걸.
그런데 차라리 그냥 서운한 마음이나 들고 지나갔으면 좋을걸, 마음 한편이 괜히 짠하고 걱정스럽다. 대부분 재미없고 우울하고 여기저기 아프기까지 하는 고사미 대신 행복해하는 고사미가 백배 좋긴 하지만 이 시간은 결과를 기다리는 단거리 코스이니 말이다. 훗날 이 모든 시간들이 부질없었다거나 후회된다거나 쓸데없었다는 기억으로 남을까 봐.
그런데 아무래도 기우 같다. 찬란했던 5월이 끝나고, 바야흐로 그 중요하다는 6월 모의고사날. 불수능만큼이나 어려웠다는데, 역시나 웃으면서 하교했다. 이유는? 잘 봐서? 그럴 리가! 점수는 모르겠고, 내일은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란다! 아이구.
6모 전날 딤임쌤이 보내주신 문자에 6평 이후 졸업사진과 연휴가 붙어있으니 긴장을 놓지 않게 다독여주라는 당부들… 역시나 한 치 앞을 정확히 내다보시는 담임쌤이시다. 아니나 다를까. 주문한 코스튬을 입고서 휘리릭 한 바퀴 도는 딸에게서 6평 후의 긴장을 볼 수가 없다…에휴.
그런데 말이다. 좀 불안한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나는 이런 내 딸이 좋다. 아등바등한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맨날 우울한 얼굴로 성적을 비관한다면 그건 또 어찌 지켜보나…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시험은 어려웠지만, 오늘은 힘들었지만 내일은 또 즐거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그 즐거움이 힘이 되어 숨 막히는 고3시절을 잘 버티게 해 줄지 그 누가 알리.
난데없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 뜬금없이 반장이 되었던 올해가, 유난히 찬란했다고 훗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엄마의 기억 속에 너의 해맑은 웃음이 찬란한 것처럼.
그나저나 딸아, 내친김에 올해 네가 선생님의 자랑이, 선생님의 기적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하하하. 아무래도… 엄마가 반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같다.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