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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지 May 27. 2024

엄마의 성지순례

유난한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유난한 엄마들을 싫어한다. 아이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는다든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가는 학원을 찾아 학원순례를 한다든지, 우리 아이는 이렇다며 (듣다 보면 대부분 천재들을 키우는 것 같다) 내 아이에 대한 걱정 같은 칭찬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엄마들. 심지어 작은 상처로 병원을 찾는다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들로 선생님을 찾아가거나 하는 엄마 같은, 이를테면 이 시대가 최고라고 칭해주는 완벽한 엄마를 싫어한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나랑 비슷하거나 나랑 다를 때다. 그러니 아마도 내가 유난한 엄마를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완벽함 그 근처에도 못 가는 엄마인 탓이리라. 부러우면 지는 거라, 부럽지는 않고 싫어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식에게 유난스러운 걸 싫어하는 내가 진심으로 임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기도다. 정한수 한 사발 떠 놓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네 민족적 전통이 내 피에도 오롯이 흐르는 탓일까. 기도에는 늘 진심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곳에나 유난스러운 엄마들이 있는 것인지 내가 가는 성당에서도 그런 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매일 아침미사를 드리러 가기 때문에 평소에 보이지 않는 분들이 보일 때가 있는데 바로 나와 같은 고3 수험생 엄마들이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시험 때만 보이는 분들. 한동네에서 같은 학년 엄마로 살았기 때문에 익숙하기까지 한 얼굴들이다. 듣자 하니, 그 집 딸은 아마도 학교에서 1,2등을 한다지. 그러니까 이른바 수시형 아이란다. 수시형이기 때문에 수능과는 상관없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기간에 목격할 수 있다.


'치, 저런다고 대학을 잘 가나? 뭐?‘


라며 한참을 삐죽 대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나라고 뭐가 다른가 싶어 괜스레 뾰족해진 마음을 살살 달래 본다.  수험생 엄마 마음이 널을 뛰는 순간이다. 참. 이게 뭐라고.



한창 꽃이 피는 4월과 5월은 성당에서는 성지순례의 기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체별로 혹은 개인적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우리나라 곳곳에 명지로 숨어있는 성지를 순례한다.


그 성지순례를 얼마 전 나도 다녀왔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교우들이 숨어 살았다는 미리내 성지. 박해를 피해 모여 살던 사람들이 집집마다 초를 켜놓고 기도하는 모습이 은하수 같다 하여 미리내라는 예쁜 동네이름을 얻었다는 곳.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이 묻힌 곳이라는 의미도 있는 성지다. 너무나 유명한 성지라 외국인도 많이 찾는 이 성지에 다녀온 날 좋은 5월. 늘 가던 성지순례였는데 그날 따라 좀 특별했다. 고3 엄마라서 그랬나.


성지순례팀의 고3엄마들은 기도하러 가는 길을 택했고, 나는 햇살을 즐겼다. 어느 틈엔가 옆에 따라오는 고양이가 오매불망 먹을 것을 달라고 야옹야옹 거리길래 먹을 것을 주었더니 시종일관 내 옆을 떠날 줄 모른다.


햇살은 더없이 따뜻하고, 성지에 참배도 하였으니 나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고양이와 눈도 맞추고 먹을 것도 나눠주면서 그야말로 고양이가 냠냠 받아먹는 그 모습을 홀린 듯이 쳐다보며 고양이멍을 즐겼다.


어젯밤을 떠올려보면 마음이 무거웠다. 6모를 앞둔 아이가 엊그제 5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가지고 왔다. 같이 성적표를 들여다보는데, 사실 등급 이외에는 성적표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등급이 생각보다 쉽게 오르지를 않고 6모는 2주 앞으로 다가오니 아이도 나도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던 거다. 성적표를 놓고 나와 이야기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랴 싶어 "잘했네~ 앞으로 등급 하나씩만 올리면 되겠다."와 같은 하나마나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농담 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아이의 얼굴이 내내 마음에 남아 그랬는지 오늘은 집에 가서 고양이 좋아하는 딸에게 이 예쁜 고양이에게 간택받은 이야기를 해 주면 좋아하겠다... 싶었다.


기도를 하며 문득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정말로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갑자기 성적이 뛰어올라 원하는 대학에 턱 하니 붙는 것? (아... 상상만으로도 배시시 웃음 지어지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싶지만 아무리 내가 내 딸의 성적향상을 위해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은들 제자리 맴맴 중인 우리 아이의 성적이 기적적으로 오르는 게 쉽게 이루어질까 싶다.


그렇다고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릴 수도 없으니 그날의 컨디션이 좋기를,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충실히 보낼 수 있기를, 어떤 결과이든,, 그것이 훗날 이 아이의 앞길에 도움이 되는 결과이길 기도해 본다. 그렇게 가만히 기도하며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듯 싶기도 하고.


유난스럽게 내 아이만 위해서 기도하는 게 왠지 모르게 미안했던 내가 요즘 하는 일은 그동안 여유가 생기면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곳들에 후원금 신청서를 넣는 일이다. 내 마음이 간절해서 그런지, 간절한 도움을 외면할 수가 없다. 내 작은 도움이 꼭 필요한 곳에 아이의 이름으로 후원 신청을 넣으며 가만히 빌어본다. 내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한동안 일본인 야구선수 오타니의 미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일이 생각났다. 세상 야구광이자 축구광인 남편은 야구계와 축구계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매일 나에게 이야기해 주는데, 매일 흘려듣던 이야기가 그날따라 유독 관심 있게 들렸다.


수많은 미담 중 오타니 쇼헤이가 길을 걸을 때 쓰레기를 줍는다는 이야기. 작은 선행이 자신에게 운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다나. '남이 버린 운을 줍는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그게 슈퍼스타로서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훌륭하고 재능 넘치는 선수가 그렇게까지 겸손하고 예쁜 마음을 지녔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고, 그 감동이 내 마음에도 남았다.


지금 내가 바라는 건 우리 예쁜 고사미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올해 수능까지 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 시간 동안에 힘써하는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거기에 나도 매일의 작은 선행을 보태다 보면, 뾰족해지는 마음 없이 순한 마음으로 올 한 해를 감사히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배고픈 고양이를 외면하지 않은 것도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었다면 무리일까.


5월. 기껏 기도하러 떠났던 엄마의 성지순례가 그렇게 고양이와 오순도순 노는 걸로 끝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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