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됐든 오늘을 살아간다.
아침의 서늘함이 수줍게 얼굴을 감춘 듯,
한낮의 녹음은 여전히 짙은 색을 띤다.
외투를 건 한쪽 팔에 온기가 고인다.
후회가 모래성처럼 조금씩 쌓여 간다.
남중했던 태양은 어느새 뉘어져 있다.
한기와 마주하고 모래성은 빠르게 씻겨간다.
어찌 됐든 오늘을 살아간다.
배움의 동기는 흥미와 필요, 두 가지로 나뉜다. 영상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건 '흥미'로써 작용했다. 한 학기 동안 휴학계를 제출하고 그 시간을 모두 영상 디자인을 배우는 데에 소모했다. Adobe 사의 AfterEffects를 서적 1권을 통해 2 회독, 3 회독을 넘기며 반복했다. 더불어 유튜브에 있는 모션 그래픽을 모작하며 숙달했다. 오로지 흥미를 위해 배웠던 당시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필요'에 의해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학습 환경이나 여건은 인터넷 강의나 유튜브가 있어 훨씬 쾌적하다. 그러나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점, 미래를 결정하는 기술로 연결된다는 점 등 스트레스와 엮이게 된다. '흥미'처럼 '필요'도 성장시키는 요소지만 나를 좀 먹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선택의 결과에 따른 부산물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영상 디자인을 선택했고 3D 그래픽까지 이어졌다. 왜 이걸 선택했을까, 하필이면 왜 디자인일까, 다른 방안을 골랐으면 어땠을까. 후회와 가정은 꼬리를 잇는다. 달콤하기 그지없어서 무용한 상상임을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필요'에 의한 선택을 강요받는 지금도 고충 요소로 다가온다. 다만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라는 다짐이 강박처럼 새겨지는 점은 씁쓸한 자조를 띠게 된다.
불행의 반대가 행복이 아니듯 행복의 반대도 불행이 아니다. 영상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할 때 즈음엔 흥분과 기대가 가득했다. 표현의 범위가 확장된 것에 대한 행복감이 흘렀다. 오늘은 지난날과 다르다. 많은 사람을 지나쳤고 적지 않은 사회 경험을 겪었다. 지쳤던 걸까. 후회, 가정, 비관 등 부의 감정이 솟아났고 아무런 생각이 없는 순간이 종종 나타난다.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만 분명한 건 행복하진 않다. 그렇다고 불행한 게 아니다. 내가 만든 오늘임을 알고 있다.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은 온전히 내 선택의 색깔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색을 피우게 된 거니까. 어릴 적 생각했던 찬란한 미래에 도달하진 않았다. 앞으로 많은 시간을 마주할수록 더 자주 멍이 들 수 있다. 그래도 행복하지 않다는 게 불행한 건 아니니까. 남아있을 무수한 선택지 앞에 설 것이다.
어찌 됐든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