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한시십오분 Nov 15. 2022

여덟 번째 심상.

다른 시간 속에 같은 계절을 보낸다.

사용 프로그램 : Cinema4D, Redshift, AfterEffects


숨을 한 움큼 담아낸다. 

새벽이 지나간 오늘은 어제와 같은 기시감을 그린다. 

걸음걸이와 보폭은 복제품을 연상하게 한다. 

달라진 건 추워진 공기뿐. 

항상 보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지나친다. 

얼어붙는 손마디에 감각이 사라져 간다. 

다른 시간 속에 같은 계절을 보낸다.




  가장 우선시하는 목표는 자아실현이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내가 누군지에 관해 자신에게 질문한다. 단순하게 왜 살아가고 있는지부터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후에 죽음은 어떻게 맞이할지 등 근원적인 물음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잘할 수 있는 것, 재능에 대해서는 오늘 혹은 내일까지 영구적인 미제다. 재능을 파악하고 활용할 줄 아는 이를 보고 천재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이루는 세상을 크게 펼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곧 자아실현이라고 믿으며 찾았던 시간이 20대의 전부다. 글쓰기처럼 쓰고 지우기를 되풀이하며 탐색을 지속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과거가 만든 확신에 불안과 의심이 엉겨 붙기도 한다. 창작을 좋아했기에 영상/그래픽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다.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와 달리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시간의 결정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고 다른 길을 찾을지에 대해 고민도 했다. 매몰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거쳐왔던 방식처럼 자아 탐색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내린 결론을 이어가야만 했다. 불투명한 불안의 안개가 자욱한 오늘에 조금씩 안주해져 갔다. 


  반복하는 답습과 퇴행은 현실 감각을 잊게 한다. 흔한 직장인들과 같이 회사 생활은 지치고 지루했다. 미래를 상상하며 공부했던 때와 달리 낮은 수준의 반복 업무는 정신을 시들게 했다. 신입 사원의 입사와 퇴사 주기는 점차 빨라졌고 회사 대표의 몰지각한 경영 방식에 나와 팀원들은 같은 날에 퇴사를 했다. 직장에서의 똑같은 일상이 매번 오버랩되며 익숙해지는 자신의 모습은 나날이 생동감을 죽였다. 내일을 비관하며 과거의 선택을 탓했다. 이런 환경에서 나를 구출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도 지난날과 비슷하다. 매일 Look Dev을 공부하고 실험하며 이미지를 만든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 잘할 수 있는 재능은 아니지만 잘하고 있는 것으로 만들려 한다. 조금씩 잃었던 자신을 되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다른 시간 속에 같은 계절을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일곱 번째 심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