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였다. 주방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퇴근길에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들르곤 할 땐 혼자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시간을 조율하고 기다리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퇴근 시에는 조금 귀찮다. 그래서 혼밥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들른 식당이었다.
주방에서 그릇들의 거친 부딪침 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아, 주방 이모의 기분이 좋지 않구나" 라는게 느껴졌다. 그런데 손님인 나는 그 소리가 참 마뜩잖았다. 조용히 한 끼를 적당히 먹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가 먹을 음식에조차 그 기분이 전가되는 느낌이었다. 내 기분 탓이었을까? 그날따라 자주 먹던 그 음식이 맛이 별로였다. 반이나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행동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카센터를 오래 하신 어떤 분이 차바퀴만 보고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운전습관 등을 알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운전 중 다른 운전자의 경적 소리만 듣고도 운전자의 성향을 조금 파악할 수 있는 느낌이 들곤 할 때가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의 기분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경적소리를 요란하게 내는 운전자를 볼 때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내 기분도 살짝 상한다.
살면서 아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 적이 많았다. 아이가 닫는 문소리, 발걸음 소리, 얼굴 표정의 소리, 말의 높낮이, 엄마를 부르는 소리 등 한 번도 아이들의 소리가 같은 적이 없었다. 소리에 많이 예민한 편인 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성격을 잘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늘 내게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아냐?"라고 질문을 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엄마니깐... "이라는 대답을 했지만, 엄마라고 다 아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다 보살필 수 없어서 엄마를 보낸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참 충실한 엄마였던 것 같다. 24시간 아이 셋에게 공평한 엄마일 수는 없었지만, 아이 하나하나 꼭 필요한 순간에 아이의 기분과 상태를 캐치하고 그 녀석만을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던 방식이 지나고 보니 현명하고 효율적인 방법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이지 않을까? 아들만 셋인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소리에 아빠의 소리에 귀를 참 잘 기울이는 아이들로 자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기분을 소리로 드러내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한다. 나 또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때, 말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을 땐 내 기분을 행동의 소리로 드러내곤 했다. 그렇지만 그런 행동들이 참 무례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에도 알면서도 때론 기분이 그대로 소리로 나오곤 한다. 소리에 무던한 사람이라도 그 소리가 가히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닐 것이다. 살아보니 나는 그렇다. 좋은 꽃노래도 여러 번 들으면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생각해서 하는 말일지라도 내 기분에 따라서 하는 말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했기에 나는 될 수 있으면 좋은 말만 하는 습관을 가지려 노력 중이다. 듣는 입장에서 소리를 내는 좋은 습관을 가졌더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 텐데, 여전히 내 입장에서 말과 행동이 우선하니 그냥 좋은 말만 하는 걸로 상대를 배려함이라고 우겨본다.
행복한 소리가 가득한 날들이고 싶다. 내가 내고 있는 소리가 행복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행복이 전해져 함께 미소 짓는 그런 날들이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와인잔을 살짝 부딪치는 소리가, 그 순간 얼굴 표정의 소리가, 달콤한 와인 한 모금을 삼키는 소리가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소리가 그래서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함께 한 이들의 기분이 들려오는 듯한 즐겁기만 한 날들로 인생을 채워가리라.
그럼에도 소리가 나의 좋은 감정만을 드러내기를 나쁜 감정의 소리는 감추기를 희망한다. 나의 기분 나쁜 소리로 다른 이들의 기분까지 상하지 않게 늘 노력하는 것이 결국은 나에게로 돌아오는 소리가 될 것이다.
나비효과, 샐리의 법칙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엔 돌고 돌아서 내게로 반사의 효과가 될 것이다. 내가 내는 소리 역시 그렇지 않을까? 소리가 나쁜 기분을 나타내지 않게 그렇게 살기를 희망한다.
고즈넉한 풍경의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는 것처럼 기분의 소리도 그렇게 퍼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