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 건데
제목을 본 순간 첫눈에 반했다.
책 제목에 쓰인 한 문장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게을러도 괜찮다고 고개 끄덕여주는 것 같아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열심히 살아야지' 수시로 각오하진 않지만, 꼬박꼬박 이른 아침에 출근하고 파김치로 퇴근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 하나만으로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는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끊이지 않고 들리는 성실한 사람들의 소식은 나를 가시방석에 앉게 만든다.
평생교육, 공부하는 직장인, 투잡, 인생 2 모작, MBA…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의 자신을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하려는 공통점이 있다. 출근 전 혹은 퇴근 이후, 잠자는 시간을 쪼개 플러스알파를 취득하기 위해 분주하다. 하다 못해 재테크를 잘해 부를 늘리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볼 때면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나 이러고 그냥 살아도 되는 걸까?'
'뭐라도 하나 배워볼까? 근데, 뭘 배우지?'
'이제 배워서 언제 써먹어? 이미 늦지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에 나를 채찍질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실천은 쉽지 않다. 머릿속에서만 옥신각신이다. 세상에서 제일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하던가. 머리가 하는 일을 실천에 옮기기란 세상을 한 바퀴 도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여기 무모한 도전일 수도 철이 없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인생을 건 실험자가 있다.
'다 때려치우고 삼 개월만, 아니 한 달만 푹~ 쉬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상상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발적 백수'를 당당하게 실천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편으로 부럽고, 결과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기도 하다. 성공일지, 실패일지. 실패한다고 해도 뭐, 다시 열심히 살면 될 일이다. 실패라기보다는 방황을 끝낸다는 의미가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열심히 사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 않겠다니 황당한 소리라는 걸 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모욕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내게 기회를 주고 싶을 뿐이다. 다르게 살아볼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마흔 살 기념 선물이랄까?" (p7)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둥둥! 여행은 시작됐다." (p8)
책 한 권 내내 열심히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지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노력에 노오오력을 한다 해도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고, 노력은 때때로 우리를 배신한다.
최선을 다 했는데도 안 되는 일은 안 되고, 별 노력하지 않아도 될 일은 된다. 요즘 유행하는 수저 계급론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흙수저, 금수저는 태어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르다. 저만치 앞서서 출발하는 그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길 수 없는 경쟁은 분명 존재한다.
저자는 1년 정도 아무것도 안 해도 먹고 살만큼의 돈이 있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그런 걱정보다 현재 누릴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얘기한다. 느리게 살고, 경쟁 없이 살고,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을 즐긴다.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생활. 아무 때나 맥주 마시고, 남들 일할 때 노는 즐거움은 진심으로 부러웠다. 행복은 어려운 일도 멀리 있지도 않은 거였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 있다.
음식점을 고를 때, 영화를 선택할 때, 물건을 고를 때도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을 고르려는 경향이 있다. 추천이 많은 것을 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 많은 사람이 좋다고 평가한 것을 고르면 '중간 이상'은 간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들이 과연 내게도 좋을까?" (p130)
다수가 좋아하는 음식, 영화, 가방, 아파트 등 수많은 것들을 한결같이 따라야 하는 걸까.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더 이상 '나'는 없다. '남'이 결정해준 것들 안에서 만족하며 사는 삶에 길들여진다.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점점 '나'의 감각은 무뎌지고 퇴화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사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에 아찔해졌다.
인생은 수수께끼라고 한다.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 질문을 던져놓고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해 풀어내는지에 따라 저마다의 인생은 달라진다. 정답이 없는 시험을 진지하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이 수수께끼는 '정답'을 맞추는 게 아니라 '리액션'을 요구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인생을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남 눈치 보지 않고 살면 좋겠다.
저자는 아직 결혼을 안 했다. 먹여 살릴 처자식이 없다. 그래서 저런 실험도, 도전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상황이 달라 공감보다는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네' 관찰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 저자의 말에 동요되었다. 목적과 목표를 향해 달리던 나를 조금 놓아주고 싶어 졌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으니 나머지 생에서는 조금 여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목적을 위해 살지 말고, 행복을 위해 살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