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니가 나지 않았다.
사람마다 1개에서 최대 4개까지 나기도 한단다.
아예 안 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나는 사랑니가 안나는 사람에 속하는 것 같다.
십여 년 전 남편은 사랑니를 두 개나 뺐다. 두 개다 엄청 아파했다. 하루 이틀 죽을 끓여줬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작은 고통도 참기 힘든 사람이라 일정 부분 엄살일 거라 가볍게 여겼었다.
그런 남편은 사랑니가 나지 않는 나를 놀린다.
‘아직 철이 없어서~’
'아직 어른이 아니다'라고 놀려댄다.
오늘은 ‘사랑니’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왔다. 우선 사랑니가 뭔지 찾아보았다.
“사랑을 하는 늦은 나이에 나는 이라서 사랑니라고 알려져 있고, 살 속에 파묻혀있다 해서 살 안에 있는 이, 즉 '살안니'라고 하다가 이것이 변해 '사랑니'가 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출처:나무 위키 >
사랑니는 영구치인 어금니까지 모두 나고 추가로 생겨나는 치아다. 없어도 그만인 잉여의 치아.
첫사랑을 하는 나이에 생기면서, 첫사랑처럼 큰 아픔을 주기도 해서 ‘사랑니’라고 불린단다.
사랑니, 예쁜 이름이다. 예쁜 이름과는 달리 트러블 메이커다.
대체로 자리를 잘 못 잡고 태어난다. 환영받지 못한 태생으로, 고통을 유발하는 골치 아픈 녀석이다.
사람의 몸은 계속 진화한다.
진화과정에서 불필요한 기능은 퇴화하고, 쓰임이 많은 것은 좀 더 나은 형태로 발전한다.
요즘은 얼굴이 작아지는 추세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작은 얼굴에 달걀형이 많다.
얼굴은 작은 형태로 진화하고, 작은 얼굴에 많은 치아는 살아남기 힘들다. 사랑니가 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니 이상한 형태로 자라나 썩거나 고통을 유발한다.
얼굴 형태와 맞물려 사랑니는 점차 퇴화하는 기능으로 보인다.
헛. 그렇다면, 내가 철이 없거나 어른이 안돼서 사랑니가 안 나는 게 아니라, 발 빠르게 진화된 고등한 생명체라는 건가? 오히려 사랑니가 난다는 건 아직 진화가 덜 되었다는 뜻이다. 앗싸.
진화된 생명체가 기쁜 건 아니고, 사랑니가 안 나는 것이(앞으로 안 날 것 같음에) 안심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쌩으로 아플 필요는 없겠다. 비켜간 고통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