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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Dec 11. 2016

13 아들과 고기를 먹는다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온 직업

가업

철없는 어린 아들과 고기를 먹는다.
아니, 고기를 굽고 자르기를 한다.
나는 고기를 굽는 사람.
나는 고기를 자르는 사람.
아들이 고기를 먹는 내내
나는 고기를 굽고 자르기에 여념이 없다.

아들이 고기를 먹어보라고 재촉하면
잠시 굽고 자르기를 멈추고, 가끔 아주 가끔
기름이 대부분이거나 타버린 고기를 먹는다.

갑자기 울컥하는 이유는 
내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내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고기를 굽는 사람.
나는 고기를 자르는 사람.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온 직업.

                                      - 박광수의 <앗싸라비아> 중에서 -


나는 형제가 많다. 

어릴 적 친구들을 봐도 나처럼 형제가 많은 이는 흔치 않다.  


1남 7녀. 


아버지가 장남은 아니었지만 시골사람이라 그랬는지 아들을 원했었다. 

할머니의 지청구도 한몫했으리라. 

친정엄마는 딸을 여섯 낳고 일곱 번째로 아들을 낳았다. 

그때부터 어깨를 펼 수 있었다고 했다.


딸 부잣집인 내 어린 시절에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그럴 거라고 추정되는 기억이다. 

밥에 김치뿐이지만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다. 

아들을 원한 탓에 힘겨운 외벌이를 묵묵히 견디던 아버지셨다.  


가끔 아주 가끔 고기반찬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돼지 삼겹살이나 닭고기다.  

삼겹살을 먹을 때 우리 형제들은 살코기만 골라 먹고,

물렁하고 하얀 비계덩어리는 떼어서 한쪽에 몰아놓는다. 

그럼, 그걸 드시던 아버지.  


삼겹살은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로 먹어야 제 맛일 텐데, 

살코기와 비계를 분리해서 따로 먹었다.  

비계는 늘 아버지 차지였다.  

막걸리와 함께 드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 동안 남자들은 모두 비계를 좋아하는 줄로 착각하며 살았다. 

아버지는 살갑거나 정이 많은 편은 아니셨다. 

정이 있다 하더라도 표현에 무척 인색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여섯 해가 지났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내 아버지도 어린 자식들을 위해 기름덩이를 일부러 드신 건 아니었을까.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게 내가 먹은 것보다 배부르고 뿌듯한 경험인 것을 아는 나는 

이제야 어렴풋이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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