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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an 01. 2017

16 반창고 아프지 않게 떼는 법

고집을 부릴 때 vs 결단을 내릴 때

반창고 아프지 않게 떼는 법


존 우드,

내 말 잘 들어.

일회용 반창고를 뗄 때

아프지 않게 떼는 방법이 뭔 줄 아니?

그건 바로 한 번에 확 떼는 거야.

네가 마음의 결정을 했으면 더 이상 망설이지 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란 말이야.


                                         - 김이율의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중에서 - 



아들이 초등 6학년, 12살 때 일화다. 

여름 방학 과제물 중 하나로 ‘종이컵 전화기’ 실험하는 게 있었다. 

종이컵과 종이컵 사이에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소리의 크기에 차이가 나는지 실험하는 거였다. 

철사, 고무줄, 실(명주실, 가는 실, 털실), 종이컵 등 준비물을 모두 사다 놓고 

아침에 아들에게 미션을 주고 출근했다. 

저녁에 집에 가보니 미션은 완료했는데 뒤처리는 매우 엉망이었다. 

철사조각, 고무줄 조각, 종이컵도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얌전하게 꽈배기 모습이던 명주실도 통째로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었다.


그 엉켜진 실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신문 사이에 끼워진 광고지를 기다란 막대기 모양으로 접어 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미친 x 머리처럼 엉킨 실을 조금 풀고, 감고, 다시 조금 풀고, 또 감고... 반복을 거듭한다. 

조금씩 정리되어가는 모습이 가지런한 게 마음이 후련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에 감긴 실뭉치는 제법 사과 뼈다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엉켜진 실뭉치는 양이 줄어들수록 풀리는 시간이 더디었다. 

며칠을 낑낑대며 풀고 감고를 반복했다. 

어떤 날은 주연이와 함께 풀기도 했다.


“엄마, 이거 중독성 있네! ㅋㅋ”

“그렇지? 자꾸 하게 되지? 손을 놓을 수가 없지? ㅎㅎ”


주연이와 TV를 보면서도 계속 실뭉치를 푼다. 

이런 걸 보면 나도 끈기라는 게 있나 보다. 

집착력도 있는 것 같고. 

역시 마음먹으면 안 되는 게 없는 걸까.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연이가 사고(?)를 쳤다.

손톱으로 아무리 해도 풀 수 없는 지경이 된 실을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헉! 너 뭐한 거야?  무슨 짓이야!”


처음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잘된 일이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충분히 타협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끊자고 결정하는 일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라면 미련스레 몇 날 며칠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을 거다. 

그러다 끝내 안 풀리면 한쪽으로 밀쳐놨으리라.


미련과 고집으로, 지금껏 하던 습관대로 질질 끄는 것이 수는 아니다.

상황에 따라 고집을 부릴 때와 결단을 내릴 때를 잘 판단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또 한 가지를 깨닫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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