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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r 05. 2017

22 유통기한

욕심인가, 게으름인가

유통기한 


'마음이 바닥을 치기 전에 뭐라도 해야겠다.'


쓸쓸한 오후.

더러워진 옷가지와 운동화를 죄다 꺼내 빨기 시작했다.


운동화의 뒤축이 닳았다.

티셔츠의 목이 늘어났다.

스웨터의 보풀이 얄밉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모양이 자꾸만 변해간다.


내가 좋아하는 너와의 관계마저.....

모든 게 낡아간다. 


    - 정민선의 <집 나간 마음을 찾습니다> 중에서 -



시간이 지나 변하는 것들엔 의무적으로 유통기한을 표기하게 되어있다.

마트에서 사 온 우유에도 식빵에도 두부에도 콩나물에도 모두 날짜 표기가 돼서 유통된다. 


배가 고픈 날이나 퇴근이 늦은 날에 마트를 가면 충동구매를 한다. 

바로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과 완제품이 카트에 많이 실린다. 

반면에 시간 여유가 있고 요리 의욕이 충만한 날에는 기본재료들로 카트가 넘쳐흐른다. 

사려고 마음먹은 게 1+1 혹은 가격 행사라도 하면 기분 좋게 구매한다. 

당장은 불필요 하지만 특정 제품이 행사를 하면 마음이 혹 한다. 

안 사면 손해 보는 것 같아 역시 카트에 담는다. 

이래저래 매번 양 손이 무겁게 들고 들어온다. 마트를 털어온다. 


그렇게 바쁨을 핑계로 하든, 좋은 엄마 코스프레를 하든 냉장고는 대체로 붐빈다. 

많이 사 오는 건 상관없다. 모두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면 무슨 문제가 있으랴. 

항상 문제가 되는 건 사다 쟁여놓는 것들이 유통기한을 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게 문제다. 

의욕에 넘쳐 구매했지만,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들은 수명이 짧다. 

며칠 안된 것 같은데 하다가도 날짜를 헤아려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부엌일은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금세 티가 난다. 

약간만 부주의해도 가차 없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돈을 주고 구매해서, 마트 냉장고에서 우리 집 냉장고로 잠시 이사했다가 다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돈 낭비, 힘겹게 들고 오느라 인력낭비(?), 냉장고에서 전력낭비, 음식물 쓰레기로 다시 낭비다. 

욕심이 문제다. 다 먹지도 못할 걸 욕심부려서 사 온 게 문제다. 

아니다. 게으름의 문제다. 좀 더 부지런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얼마 전부터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마트 입구부터 다짐한다. 

손을 뻗쳤다가도 '다 못 먹어, 욕심부리지 마' 나 스스로를 나무란다. 

싸다고 무턱대고 사지 않고 필요로 한지 다시 한번 점검한다. 

오늘 할 재료가 아니면, 다음에 사는 걸로 생각을 바꿔가고 있다. 

좀 많이 나아진 것 같다. 


다만, 냉장고가 허전하다. 며칠 장을 보지 않으면 많이 휑하다. 

우리 집 청소년은 한참 성장기라 밥 먹고 돌아서서 간식을 찾는다. 

매일 냉장고와 면담한다. 

한참씩 냉장고를 열어놓고 위층부터 스캐닝하며 뭔가를 찾는다. 


(나) "아들! 뭐 찾아?"

(주연)...

(나) "뭐가 있었음 좋겠는데...?"

(주연) "아니 그런 건 없고. 뭐가 있나 그냥 보는 거야, 엄마"


피드백도 안 주고, 뭐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뭔가 신선한 간식거리를 찾는 눈치다. 

한동안 빵, 우유, 치즈, 초콜릿, 요플레를 다양하게 돌아가며 사다 놨는데, 요즘은 질렸는지 시큰둥하다. 

입으로는 다이어트해야 한다면서 눈으로는 뭔가를 찾는다. 

눈이 번쩍 뜨일만한 간식거리가 뭐가 있을까 고민이다.


떠오르는 답은 딱히 없고, 여전히 고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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