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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Apr 22. 2017

44 공부하는 부모, 따라 하는 아들

좋은 학교를 가려는 목표는,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함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면 ‘시험’에선 해방인 줄 알았다. 

그러나 회사에도 시험이 있다. 

학교에서와는 다른 종류의 시험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시험을 준비한다. 

눈치 있게 업무를 해야 하고 상사의 취향도 잘 파악해야 한다. 

동료와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다. 

평가점수가 좋아야 승진을 하고, 승진하면 월급이 오른다. 그래야 회사에서 인정받고 오래 다닐 수 있다. 

또 어학등급을 높이고, 사내 자격증을 따야 하고, 해마다 스스로 목표를 수립하고 실적관리를 해야 한다. 

일을 잘 해야 하는 것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몸값을 높여야 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인 셈이다.


나는 20여 년 넘게 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우여곡절이든 수월하게든 각종 시험무대에서 살아남았다는 얘기다. 

그동안 좋은 상사들만 만났으니 운도 좋은 편이었다. 

자잘한 사건이야 있었지만 큰 트러블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나름대로 자기계발도 성실히 했다. 

어학, 사내자격시험, 업무 관련 자격증 등 떠들썩한 결과물은 아니지만, 꼼지락꼼지락 성의를 보일만한 성과들이었다.

회사에서는 일하고,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는 집에 싸 들고 간다.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엄마가 연출된다. 

또 책을 좋아한다.

시험의 고비를 넘기면 내가 좋아하는 소설과 에세이를 마음껏 읽는다. 

빨리, 많이 읽지는 않지만 손에서 읽을거리를 놓지 않았다. 

엄마의 뒷모습이 항상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이어서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남편도 한때 무협소설에 빠져있었다. 

학창 시절엔 잠수 수준으로 빠져있었고, 결혼해서도 완결된 시리즈를 통째로 빌려와서 읽곤 했다. 

요즘엔 스마트폰으로도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편하게, 수시로 읽는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 남편은 소설을 끊고 국가기술자격증에 도전했다.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몇 년을 고생하더니 자신의 분야에서 ‘기술사’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자격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많이 힘들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도 힘들었는데, 직접 겪어낸 사람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일 것이다. 

원형탈모가 올 정도로 열심히 했다. 

아빠의 뒷모습도 아이에게 귀감이 되었다.

공부하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도 처음엔 책을 펼쳤다. 

그러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비슷한 모습에 불감증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는 책을 보는데 아들은 게임을 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가 해야 할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아들이 되어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학생'이 직업인 아들은 자신의 할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벼락치기 습성이 있기는 하지만 의무를 다 한다.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으로 느끼는 것 같다.


가끔 책 읽으라고 잔소리하는 엄마를 본다. 

내가 알기로 그 엄마는 책 보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즐기는 엄마다. 

본인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는 강요한다. 그런 훈육이 먹힐 리 없다. 

자신은 드라마, 예능 다 챙겨보면서 자식에게는 공부하라고 등 떠미는 엄마도 있다. 역시 통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는 그대로 흉내 낸다.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 공개수업 행사가 있었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담임선생님 얼굴을 잠깐 뵙고 몇 마디 나눴었다. 

그때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다.


"제가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아이를 보면 그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어요." 하신다.


처음엔 갸우뚱했다. 

칭찬이야? 욕이야? 

집에 와서도 계속 그 문장이 맴돌았고, 진의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 아들이 소심한가? 좀 쑥맥 같다는 얘긴가? 조용한가? 내가 사람을 잘 믿는 편인데 그런 점이 아들에게서도?


나 자신이 평가하는 내 안 좋은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뜻으로 하신 얘긴지 모르겠다.

한참 고민한 결과, 

'아들에 대해 좋은 얘기만 해주고 칭찬하셨던 것으로 봐서 칭찬이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가 가졌으면 하는 좋은 습관이 있다면 부모 자신의 모습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나는 그런 습관이 있나? 

내겐 습관이 되지 않은 어려운 행동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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