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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y 16. 2017

53 부회장 스트레스 (2/2)

부회장이 된 지 3주가량 지난 거 같다.

아침마다 주연이는 등교 준비, 나는 출근 준비하면서 나 화장할 때 옆에서 바지 하나 입고, 양말 한쪽 신고 그러면서 엄마와 수다를 떤다. 엄마랑 이런저런 대화하는 게 제가 좋아하는 시간들 중에 하나라고 말하는 아들. 엄마도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해. ^^


어느 맑은 날 아침,

여느 날과 같이 함께 대화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그날은 체육이 들었던 날인데, 어떤 사건이 생각나는지 짜증을 낸다. 아침엔 대체로 컨디션이 최상인 아들인데, 얼굴까지 일그러뜨리며 감정을 드러낸다.


(주연) 맞다. 오늘 체육 들었지? 에이, 짜증 나네(인상이 확~ 구겨진다)

(나) 어? 왜? 체육 들었는데 왜 짜증 나?

(주연) 원래도 체육시간을 싫어했지만, 부회장 되고서 더 싫어졌어.

(나) 왜에~뭔 일 있었어?

(주연) 아니. 애들이 말을 안 들어요. 말을.

 부회장이니까 내가 선생님 오기 전에 줄을 세워야 하는데,

 애들이 떠들기만 하고 줄도 안 서고 그래. 내가 소리를 크게 질러야 돼.

 하도 소리 지르니까 목이 다 아파.

(나) ㅠㅠ그래? 그럼. 어째야 되지?

 애들이 말을 안 듣는구나. 회장은 머해? 

(주연) 원래 줄 세우는 거 회장도 해야 하는데, 걔는 그런 거 안 해.

 쉬는 시간에 복도 질서 지키기 그것도 안 해. 맨날 나하고 황ㅇㅇ (여자 부회장) 하고만 해.

(나)... 

(뭐라고 얘기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주연) 회장 진짜 못됐다. 지난번에 우리 조가 청소당번이었는데, 자기 영어학원 가야 한다고 먼저 간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청소 다 하고 가라고 했는데, 그냥 자기 맘대로 먼저 가버렸거든.

    근데, 우리가 청소 다 끝나고 집에 가려고 하니까 옆에 반에서 서 있는 거야.

    걔네반에 친구랑 같이 갈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뭐라고 하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러면서 그냥 가버리는 거 있지?


물 만난 고기처럼 평소에 쌓인 게 많았는지, 나에게 다 일러바친다.

어른들 세계에서도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아이들 세계에도 그대로 있는 모양이다.

그 아이들이 크면서 변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 성질을 그대로 갖고 있기도 한다.

간혹 밉상인 사람이 있긴 한데, 어른이라면 말로 대충 때우기도 하고, 눈치껏 행동하곤 하는데 아이들이라 그런 연기가 좀 부족한 듯싶다.


회장이 책임감이 좀 부족한 듯도 싶고, 아들 말로는 1학기 때만 부회장 한다던데. 1년 내내 하라고 하면 전학이라도 가겠단다. 단단히 속상한 모양이다. OTL

이런 얘기를 듣고 어른으로서 무슨 말을 들려줘야 하나.


- 그래도 넓은 마음으로 참으라고? 어른인 나도 못하는 일이면서?

- 함께 욕해줘야 하나? 그 친구랑 놀지 말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어른의 도리는 아닌 것 같다. 뭐라고 얘기를 해줘야 할지 머릿속으로 고민만 하다가 끝내는 아무 말도 못해줬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 다양성을 경험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으려나, 또 얼마나 많은 속상함을 경험하려나.

이런 일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도 아닌데 벌써부터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대신 겪어줄 수도 없고, 혼자 이겨내고 깨달아 가야 하는 부분일 테니까. 


그냥 지켜보며 기다리는 수밖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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