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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y 17. 2017

55 빈병 재활용 하기

2012년, 열두 살의 아들.


2012년엔 남편이 지방으로 파견근무가 있었던 해다. 약 18개월 정도 주말부부로 지냈었다. 

더운 여름날 저녁. 시원한 맥주 한잔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 거기에 주말마다 올라오는 남편과 조우하는 금요일은 '작은 파티' 가 열리는 날이다.


금요일엔 자연스럽게 [컵라면+맥주+육포] 등으로 간식과 안주거리를 준비한다. 메뉴는 조금씩 달라진다. 순대볶음, 쏘야볶음 이 오르기도 하고,  시간이 되는 날은 아들과 함께 한입에 넣을 수 있게 쌈을 준비하기도 한다. 메뉴는 그날의 시간적인 여유에 따라, 끌리는 음식에 따라 다양하다.


더위가 가신 지금은 그 작은 파티가 문을 닫았지만, 한 여름엔 몇 주 동안 계속됐던 이벤트였다. 맥주는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캔으로 또는 페트병으로 어떨 때는 병맥주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주 동안 쌓였던 빈 병이 눈에 들어왔다.  한두 병일 때는 재활용 수거함에 그냥 넣었는데, 여덟 병이 모이니 슈퍼에 가져다주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생각난 김에 바로 남편과 나눠 들고 슈퍼에 간다.


남편 : 요즘 누가 이런 걸 바꾸러 다닌대? 몇 푼이나 된다고 이런 수고를 해?
 : 돈 때문에 그러는 거면 창피할 수도 있지. 근데 우린 돈 때문이 아니라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고, 빈 병 재활용 차원으로 반납하는 거니까 좋은 일 하는 거야. 좀 으쓱해해도 돼. ^^


꿈보다 해몽이다. 난 좀 특정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먹다 남긴 알약도 몇 달을 꾸역꾸역 모아서 약국에 반납한다. 어떤 책에서 읽은 후론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질 못한다. 폐기 약을 수거하는 것도 할 얘기가 좀 있는데, 몇 달을 모아서, 약 봉투를 일일이 제거하고 알약만 비닐 팩에 담아 가는 수고를 했는데 받아주질 않는다. 동네 약국 6군데 중에 한 군데만 받는다.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다. 한 약사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란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 뒤론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현실과 마음속에 양심이 갈등을 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아무튼, 그날의 숭고한 활동을 마치고, 빈 병 8개와 맞바꾼 동전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 이 동전에 표시를 해 놓으면 좋겠어. 다른 동전과 구별되게. 어째 동전이 무겁게 느껴지는데.
남편 : 참. 나. ㅋㅋ

나 : 주연아!  이거 너무 무거워. 이것 좀 받아줘!
    (땡그랑 동전 4개, 350원을 손에 쥐어준다. 무거운 걸 들듯이 연기를 해가며)


주연 : 어~?  이게 뭔데 엄마?
나 : 빈병 하고 바꾼 돈인데, 병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주연 : 엇! 진짜네!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아~~ 악!  한 손으로는 무리야!! 악~ 팔이 부러질 거 같애.


언제 이렇게 능구렁이가 되었는지 오버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나보다 한술 더 뜨는 게 점점 어른의 모습을 하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벌써 이 만큼 커버린 게 아쉽기도 했다. 저만치 달아난 느낌이 금방 어른이 돼서 날아갈 것 같다.


가만히 그 날을 생각해 보니 또 웃음 난다.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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