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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un 03. 2017

69 어느 토요일의 미션

2012. 7. 5, 아들이 초등 5학년 때의 에피소드. 


어느 날씨 좋은 토요일 오후. 사당동으로 ‘도시락 배달’이 있었다. 

토요일인데도 밤 10시까지 강의를 들으며 저녁 먹을 시간이 없는 남편을 위한 깜짝 도시락이다. 

아들 말대로 ‘Mission Impossible’이다. 

배추김치 6통을 담그고 도시락을 준비해서 가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계획한 시간이 오후 2시, 빨리빨리 준비해서 최소한 6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저녁 먹을 시간을 10여분밖에 안 준다고 하는데, 그 시간에 무조건 맞추기 위해 거꾸로 계산한 시간이다. 4시간여 동안 무사히 완료할 수 있을까? 체내에 엔도르핀 분비가 활성화되며 꼭 ‘성공하고야 말리라’는 의욕이 충만해진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은 숙제처럼 억지로 하기보다 게임처럼 즐겁게 하고 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와 비슷한 맥락이다. 김치 담그는 귀찮은(!) 일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도시락 프로젝트와 아들을 참여시킨다. 아들과 함께 하는 건 뭐든 게임처럼 재미있다. 아들과 시답잖은 수다를 떨면서 생산적인 일을 한다. 꿩 먹고 알도 먹고 일석이조다. 


                                          

계획

2시 : 배추절임

~4시 : 절여진 배추 씻고, 나머지 부가적인 재료들 다듬어서 씻고 썰어놓기

~5시 : 도시락 준비 시작

2시 : 배추절임


실적

~4:30 : 재료 준비, 썰기까지 완료 (고춧가루가 부족해 집 앞 슈퍼에 다녀오기 ㅠ)

~5:40 : 김치 담그기 미션 완료

~6:40 : 도시락 싸고 집에서 출발


다행히 지하철 기다리는 시간이 적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열차가 들어왔고 하늘이 우리 편임을 실감했다. 오히려 8시 휴식시간 10분 전쯤 다소 여유 있게 도착했다. 기분이 좋았다. 김치를 담근 터라 마음도 매우 홀가분하다. 혼자 김치 담근 후유증으로 눕고 싶을 만큼의 허리 통증을 제외하고는 모두 양호하다.


저녁을 김밥 집에서 먹는다. 라면 하나 시킨 뒤 셋이 나란히 도시락을 까먹는다. 음식점 주인과 종업원들이 노골적으로 쳐다본다.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나?’

‘음식점에 도시락 싸오는 사람이 다 있네’


그들의 눈에서 대사가 읽힌다. 신기한 걸 본 표정이다. 혹여 싫은 소리라도 들을까 싶어 눈치 보며 먹었다. OTL 남편을 다시 학원에 들여보내고 두 시간 남짓 뭘 할까 아들과 고민한다. 


주연이 이발을 하기로 한다. 

한 미용실에 들어간다. 이름표를 단 헤어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맡긴다. 아들의 두상을 한참 관찰하더니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제안을 한다. 


'오~! 동네 미용실 원장 하고는 차원이 다른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진다'


주연이도 마음에 쏙 드는 눈치라 ‘알아서 하시라’ 맡긴다. 가격은 동네보다 몇 천 원 더 요구한다. 현금으로 하면 1천 원을 깎아준다나 뭐라나.


이발을 했는데도 시간이 남아 나머지 시간을 고민한다. 그러다 아들이 생뚱맞게 ‘노래방’을 제안한다. 갑자기 노래방이 나와서 놀랐다. 그러나 아주 민주적인 엄마인 나는 그 의견에 동참한다. 

노래방도 오랜만이고, 맨 정신(!)에 노래방은 아주 낯설고 어색했다. 노래도 안되고 아는 노래도 별로 없고 음치에 고음불가, 대략 난감이다. 아들도 잘 부르는 편은 아니다. 역시 신은 공평하다. 역시 아들은 머리를 쓰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한 시간 가량 재미있게 놀았다. 서비스로 20분을 추가해줬으나 5분을 남겨두고 일어서야 했다. 남편과 만나 집으로 온다. 노래방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밀로 하자고 한다. 


“약 올리는 것 같잖아”

“혼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열 받을 것 같아, 엄마” 한다. 


토요일 오후, 불가능할 것 같던 미션 모두 성공으로 보람찬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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