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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un 04. 2017

70 년간 목표 세우기

2010년 1월의 어느 날. 아들은 열 살, 초등 3학년이다. 


새해가 되면 회사에서는 개인별 목표를 세운다. 일 년 동안 해야 할 일을 적고, 연말에는 목표 대비 얼마나 달성했는지 실적을 챙긴다. 몇 해전부터 회사 업무 이외에 개인 인생에도 목표를 세워봤다. 생각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종이에 적어 다이어리 제일 첫 장에 끼워놓는다. 


3~5가지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제법 큰 계획들을 써넣는다. 써 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들여다보며 점검한다. 

                             

2010년 달성 목표 (나)

1.  책 100권 이상 읽기

2.  영화 30편 이상 보기

3.  일주일에 3회 이상 글쓰기 (최소 A4 1페이지, 일기  포함)

4.  수영 배우기

5.  산에 5회 이상 오르기


나는 워드로 깔끔하게 프린트를 해서 붙여놨다. 퇴근해서 내 목표를 보여줬더니 아들도 따라 하겠단다. 

                             

2010년 달성 목표 (아들)

1.  책 100권 이상 읽기

2.  시험 올백 1회 이상 받기

3.  등산 20회 이상 가기

4.  여행 1번 가기

5.  다치지 않기


마지막 네 번째 다섯 번째는 진도가 안 나가길래 몇 개 던졌는데, 그중에 아들이 취사선택했다. 


목표는 정량화할 수 있도록 수치화해야 한다. 나중에 실적 점검할 때 달성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선 숫자로 목표를 수립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고도 조언해줬다. 회사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있나 보다. 


남편이 얼마 전 재테크 책을 읽고 감명받아 부자일지를 작성 중이다. 종이신문도 부자일지를 위해 구독신청을 했다. 엊그제는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신문 스크랩(부자일지 작성용)을 하다가 기사 하나를 봤나 보다. 무슨 기사였는지는 답을 못 들었고, 아무튼 그 기사에 IT 관련 기사가 났었나 보다. 


별안간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꿈이 바뀌었어” 

“뭐로 바꿨는데?”

“IT 분야 엔지니어가 될 거야. 특허도 많이 낼 거야. 특허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내서 필요한 사람한테 무료로 쓰라고 하기도 할 거야. 나는 다른 특허도 많을 거니까.”


그러더니 ‘아이디어 수첩’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면서 적당한 수첩을 고른다. 어제도 퇴근해서 집에 갔더니 첫날 아이디어 2개, 어제 아이디어 3개를 생각해 놓은 걸 수첩에 적어두고 내게 보여준다. 아이디어를 일일이 설명까지 해준다. 크게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게 기특해서 칭찬을 많이 해줬다. 그때 눈치 없는 아빠의 한마디.


“그건 이미 나와있잖아~”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러줬다. ㅋㅋ 

“그건 꽤 괜찮은 생각인데~” 


나중에는 아빠도 칭찬을 해줘서 아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쭐한 표정이 되었다. 


아들과 함께 하는 거의 모든 순간이 좋지만, 책을 읽고 행동으로 옮길 때 더 이쁘다. 좋은 습관이 꾸준하면 더 좋을 테지만 꼭 그렇진 않다. 연간 목표도 계획만 세워두고 잃어버릴걸 안다. 어떤 계획이든 열흘을 못 넘기는데, 일 년을 어떻게 버틸까. 알지만 속는다. 그냥 내버려둔다. 


어른인 나도 한 가지를 꾸준히 실천하지 못한다. 그런 나를 알기 때문에 자기계발서를 읽고 동기부여받아 조금 열심히 살고, 효과가 다해 흐지부지되면 다른 책을 읽고 다시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살곤 한다. '결심 중독'이다. 그런 게 반복되면 과거의 나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직진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인생을 긴 마라톤으로 생각하면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 끝에 뭐가 있을지, 끝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들은 성장기다. 스펀지처럼 뭐든 흡수하고 뭐든 그려질 수 있는 하얀 도화지다.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다. 오염된 것, 옳지 않은 것은 천천히 알아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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