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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un 08. 2017

74 피아노 관두면 안 돼요?

                                                                                       

2009년 12월, 아들은 초등 2학년이다.


아들이 아빠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침, 저녁으로 얼굴 보는 사이인데 편지를 썼다. 알고 보니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편지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을 이용해 썼다고 한다. 한데 내용은 단순히 시간을 채우기 위한 편지는 아닌 것 같다. 뼈가 있는 편지다.


"안녕하세요. 저 주연이에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저는 피아노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매일 어려운 악보만 쳐보라고 하시잖아요.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나면 손가락이 아프고 매일 어려운 악보만 보니 머리가 어지러워요"


아들은 학원 선생님들이 대체로 예뻐라 했다. 이해가 빠르고 수업태도도 좋다고 했다. 피아노 선생님은 전화보다는 간단한 편지를 이용해서 아들 편에 소식을 전해주셨는데, 아들이 피아노를 잘 친다고 했다. 글은 정제된 텍스트라 말보다 감정을 알아채기 어렵다. 그냥 하시는 말씀 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피아노를 배운지는 유치원 때부터였으니 4년이 넘은 것 같다. 

객관적인 수준은 모르겠지만 잘 치는 줄 알았다. 즐기는 줄 알았는데 이런 편지를 받았다.


아들에게 피아노를 강요했나 보다. ‘캐논 변주곡’을 쳐보라고 몇 번(?)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마음에 걸린다. 더듬더듬 매끄럽진 않았지만 제법 귀에 듣기 좋았다. 손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부부의 눈에는 아들이 실수해도 마냥 좋았다. 뭔가를 배워온 결과물을 선보이는 시간이라 그냥 흐뭇하게 봤다. 내가 피아노를 못 치기 때문에 더 좋아 보이기도 했다. 


그냥 계속 듣고 싶어 ‘앵콜’을 요청한 건데 그게 부담이고 시험무대처럼 느꼈나 보다. 아들한테 미안했다. 피아노 말고 또 뭔가를 무의식 중에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앞으로는 연주하고 싶을 때만 치라고 하면서 학원도 그만두기로 협의가 되었다. 학원을 끊는다는 얘기가 제일 하기 힘든데, 좋게 얘기도 잘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언제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상식적이고 이해되는 수준이면 부모는 따라준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서로 대화를 통해 어려운 점은 해결해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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