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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ul 02. 2017

81 아들의 생일

2014. 3. 4,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다. 


어제 퇴근 무렵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액정에 귀여운 사진과 함께 ‘energy’라고 발신자가 뜬다. 아들이다. 중학교 입학식에 다녀와서 친구 집에서 놀다가 그제야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했다. 월요일엔 특별한 스케줄이 없었던 터라 노는 시간이 길었다. 전화를 잘 하지 않는 아들이긴 하나 가끔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기도 한다. 이유 없이 전화해서 학교에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하나 대부분은 용건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제의 전화는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준비물 리스트를 통보(!) 하는 전화였다. 자신의 힘으로 준비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 등본 1통, 가족관계 증명서 1통, 반명함 사진 3매


갑자기 화가 났다. 6시 넘어서 전화해서는 며칠 여유가 있지도 않고 당장 내일까지 가져가야 한다면서 천하태평이었다. 부랴부랴 껐던 컴퓨터를 켜서 등본은 출력했으나 가족관계서류는 프린트로 안 되는 서류란다. 동사무소에 가거나 몇 군데밖에 비치하지 않은 무인발급기를 이용하란다. 무인발급기 위치를 확인하니 다행히 수원역에 하나가 있다. 헉. 그런데 이용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로 정해져 있다. 왜? 왜 이 서류만 이용 조건이 까다롭지? 잠깐 의아했으나 이유를 아는 게 귀찮아졌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당장 필요한데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지. 사진은 교복 입고 가서 찍으라 해놨고, 등본은 준비했고, 나머지 서류만 하루 늦게 제출하는 수밖에. 아무튼 오늘은 물 건너 간 서류다. 등교 둘째 날부터 어긋나는 느낌이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담임선생님 눈 밖에 나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사진을 찍고 왔다는 아들 전화에 대고 싫은 소리를 좀 했다. 미리 말했으면 잠깐 외출해서라도 서류를 떼어놨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잔소리를 불렀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3월 3일, 아들의 생일이었다. 좋은 얘기로 타일렀어도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직 어린애인데, 친구랑 노느라 잊어버릴 수도 있을 텐데, 어른의 기대치를 아들에게도 들이댄 건 아닌지 후회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렇게 후회하는 시간이 더 걸렸을 것 같다.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듯,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기에만 바빴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내 감정 해소에만 급급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독서의 내공이 쌓여서인지 후회의 시간이 짧게 다가왔다. 워킹맘의 아들로 살면서 다른 아이에 비해 손해가 더 많았을 텐데, 긍정적으로 먼저 생각하지 못한 짧은 생각에 자책했다. ‘3개 중에 2개는 완료했네, 2/3는 준비 완료’ 긍정적인 평가로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준비하지 못한 1/3에 초점을 맞춰 싫은 소리를 했구나 싶어 반성의 시간이 컸다. 


집에 퇴근해서도 아들의 수난은 이어졌다. 아빠 안경을 부주의해서 깨트릴 뻔했고, ‘버럭’ 아빠의 야단을 맞아야 했다. 오랜 야단침은 아니었지만 화가 난 상태가 분명한 아빠의 침묵이 이어졌다. 길어지는 침묵,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눈치 보는 상황이 이어지고 분위기는 북극의 추위만큼 냉랭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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