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제이 Jul 03. 2017

82 Office 놀이

                                                                                      

2013년 5월, 아들은 초등 6학년이다. 


느긋하고 약간 늘어지는 휴일이다. 엄마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office에서 흔한 '상사-부하', '갑-을' 흉내를 좀 내봤다. 부하가 올린 기안을 한 번에 통과시키지 않고 한번 reject를 놔주는 센스(?)를 발휘해 조금 애를 태웠다. 아들도 게임은 무척 하고 싶으나 엄마의 승인이 없으면 안 되니 최대한 비위를 맞춰준다. 


내가 요구한 내용은 게임을 하기 위해 엄마를 설득시켜보라는 거였다. 설득하기 위한 도구로 딱딱한 노트를 결재판처럼 하고, 그 위에 깨끗한 A4지 한 장을 내밀었다. 말로 설득하지 말고 글로 써오라고 주문했다. 세로로 반을 접은 종이 왼쪽과 오른쪽에,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서 아래와 같이 적어왔다. 처음 한 번은 좀 성의 없게 대충 적어와서 반려처리를 했다. 


"상사한테 보고서 가져가면 보통 두세 번은 수정할 각오를 해야 해. 한 번에 통과하는 일이 잘 없거든"


'회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심어주는 건 아니겠지?' 하는 문장이 짧게 떠올랐지만, 사회에 나오면 치사하고 자존심 상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보고서 반려' 쯤이야 애교에 속할 거라는 생각이 더 우세했다. 



장점

1. 난 아직 초등학생이다.

2. 오늘은 주말이다.

3. 너무 열심히 하면 지쳐 정작 중,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못한다.

4. 현재 심심하다.

5. 할 것을 다했다.

6. 재미있다.


단점 

1. 내년엔 중학생이다.

2. 나와 약속했다.

3. 내일은 시험이 있다.

4. 시간을 버리게 된다.

5. 좋지 않다.


장점을 1개 더 많게 써왔다. 머리를 좀 쓴 것 같다. 

두 차례에 걸쳐서 올린 제안서에 최종으로 결재해줬다. 더 애태우면 인내심의 한계가 올 것 같았다. ㅋㅋ



결과 : 조건부 승인 (최대 2시간 허용)

매거진의 이전글 81 아들의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