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아들은 초등 5학년
가을부터 시작된 아들의 종이접기 사랑은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종이는 다양하다. 달력을 북~ 찢어서 하기도 하고, 신문사이에 끼워오는 전단지가 쓰일 때도 있다.
그러나 역시 색종이와 A4용지가 주로 사용된다. 색종이는 사이즈가 작아서 많은 공정을 들여 완성하는 작품엔 적합하지 않았다. 작품도 처음엔 단순하고 뚝딱 완성되는 것들에서 좀 더 복잡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로 옮겨갔다. 아들은 점점 큰 종이를 원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출근하는 내게 전지를 주문한다. 퇴근길에 꼭 사 와야 한다고, 절대 까먹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한다.
그 커다란 종이는? 맞다. 학교 다닐 때 팀에 내준 숙제를 전지에 또박또박 옮겨 쓰고 대표로 한 명이 발표할 때 쓰던 그 하얗고 커다란 종이다. 종이 접기에 쓰일 줄이야...
종이접기를 향한 관심은 동영상으로 이어졌다. 그런 영상이 있을까 싶었는데 내가 모르는 덕후들의 세상이 따로 있었다.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고, 종이 접기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종이의 재질도 사이즈도 다양했다. 세상은 넓고, 특이한 직업도 많구나 다시 한번 실감했다.
많은 동영상 중 몇 사람에 꽂혀서 그들이 올린 영상을 주로 봤다. 일본 사람도 있고 미국인도 있었다.
컴퓨터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영상을 틀어놓고 재생하다 멈추고, 다시 재생하고를 반복하며 화면 속에 전문가를 따라 접는다.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접는다.
여러 번 재생해도 못 따라가 포기한 작품, 접다가 실패한 작품, 완성은 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크기도 색도 다양하게, 완성과 미완성의 종이들이 쌓여갔다.
한참 미쳐있을 땐 퇴근하고 들어가면 한 움큼씩 만들어놨다. 방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종이들, 버릴걸 추린다. 한바탕 버리고 다시 쌓이고 또 버리고를 반복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칭찬을 바라는 듯 한참 설명한다. 사진 위에 보이는 하얀 종이로 접은, 날개가 있는 아이는 저래뵈도 꽤 오랜 시간이 들어갔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어렵게 성공한 작품이라 그랬는지 특별히 애정 하는 아이였다.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 아이라 만족도가 높았다. 내 눈에도 멋있었다. 제대로 찍은 사진을 못 찾아 아쉽지만, 크기가 다양해서 사이즈별로 전시해 놓으면 '드래곤 패밀리'로 이름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볼만했다.
한 번은 딱딱한 하드보드지를 사서 양면테이프를 이용해 제일 잘 만든 작품 위주로 컬렉션(?)을 만들어 주기도 했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다뤄주면 아이들은 좋아한다. 부모에게 인정받는 느낌이 좋았나 보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느낌, 존중받는 느낌은 자존감을 높여준다. 어릴 때 저축해 놓은 자존감의 키가 높을수록 좋다. 어른이 됐을 때, 자존심을 다치는 상황에 부딪쳤을 때 쿨하게 이겨낼 든든한 기초체력이 될 거라 믿는다. 아이가 어릴 때 자존감을 가능한 크게 키워줘야 하는 이유다. 아이였을 때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많이 해주는 게 좋겠다.
이 글을 쓰면서, 하드보드지에 만들어놓은 컬렉션을 찾아 온 집안을 뒤졌다. 컬렉션이 한동안 놓여있던 자리가 있는데, 가구 위치를 바꾸면서 사라졌다. 구석구석을 뒤졌는데 안 나온다. ㅠ 버리진 않았을 텐데 어디 숨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