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쉽습니다 (직장편)
“높은 목표에 작은 예산,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이전과는 다를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노력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첫 번째 직장은 돈을 써서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가장 불편해하던 곳이었습니다. 광고라는 수단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가능하면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기준이 강했습니다. 그런 조직에서 로엠이 송혜교를 모델로 쓰고, 뉴발란스가 김연아를 모델로 쓴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직원들 대부분은 적잖이 놀랐습니다. 어떻게 회사에서 그 결정을 승인했는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돈을 쓰지 않는다는 기준 때문에 놓친 기회도 분명히 많았습니다. 돈을 썼다면 훨씬 빠르고, 크게 갈 수 있는 길들을 돌아가야 했고, 그 과정은 종종 답답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불편함이 제게는 꽤 중요한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돈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해야 했고, 직접 움직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블랭크에 있을 때는 전혀 다른 환경을 경험했습니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예산의 제약도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2018년부터 2022년 사이 많은 스타트업들이 비슷한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투자를 받고, 인재를 영입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그중 일부가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고, 다시 투자로 연결되는 사이클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구성원들은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었고, 경험의 폭도 빠르게 넓어졌습니다.
다만 그 모든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예산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조금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빠른 외주, 검증되지 않은 솔루션, 보기 좋은 레퍼런스. 결과는 그럴듯했지만, 조직 안에 남는 것이 많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한 가지는 분명히 다르게 하고 싶습니다. 가설 없이 예산을 사용하는 것만큼은 허용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속도가 중요하더라도, 피드백 문화를 뒤로 미루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이유로, 저 역시 그 속도를 늦추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쉬운 이유는, 조직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조직에서 돈은 가장 직관적인 문제 해결 수단입니다. 시간이 없을 때, 사람이 부족할 때,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때, 예산은 언제든지 대안처럼 등장합니다.
이 선택 자체가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문제는,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빠르게 선택된다는 점입니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지 않을까?”, “이미 다른 회사에서 해본 방식이니까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은 조직 안에서 쉽게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조직은 성과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성과를 구매하는 구조에 익숙해집니다.
문제를 정의하는 힘, 가설을 세우는 능력, 시행착오를 정리하는 역량은 점점 조직 밖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편해지기는 하지만, 단단해지지는 않습니다. 돈이 없어서, 배울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첫 직장에서 예산은 늘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분명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초반 결과물의 완성도도 높지 않았습니다.
돈을 썼다면 외부 전문가들이 훨씬 더 잘해 주었을 일들입니다. 하지만 돈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애썼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직접 실행해야 했습니다.
HRD, 조직문화 활동, 컨설팅과 시스템 구축까지, 외부와의 협업은 최소화되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은 늘 담당자였습니다.
실행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경험은 고스란히 개인과 조직에 남았습니다.
적은 예산으로 높은 목표를 맞추다 보니, 이전에는 떠올리지 못했던 방법들도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인테리어 집기를 재활용하거나, 매장 평수에 맞춰 인테리어를 모듈화하고, 벌룬 마케팅을 직접 배우고 매뉴얼로 만들었습니다.
MBTI 워크숍, 잡 크래프팅, 핵심인재 코칭 과정들도 직접 설계하고 진행했습니다. 느렸지만, 그 시간은 모두 내부 역량으로 쌓였습니다.
에어비앤비는 돈이 없어서, 고객을 만났습니다. 마케팅 예산이 거의 없던 시절, 창업자들은 뉴욕에 있는 호스트들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전문 촬영 비용을 아끼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얻었습니다.
어떤 집이 선택되는지, 고객이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사진 하나가 신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몸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경험은 이후 에어비앤비의 숙소 노출 기준과 고객 경험 설계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만약 충분한 예산으로 외주를 맡겼다면, 결과물은 더 깔끔했을지 모르지만, 시장을 이해하는 감각은 남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돈으로 해결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하는 순간은, 리더의 몫입니다.
리더에게는 한 번쯤 꼭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이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인지, 불편한 과정을 건너뛰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내부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돈을 쓰지 않기로 결심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 문제 정의조차 충분히 되지 않았을 때,
- 가설 없이 ‘일단 해보자’가 반복될 때,
- 실패가 학습으로 정리되지 않을 때입니다.
이때 리더가 돈으로 해결해버리면 조직은 편해집니다. 하지만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리더가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면, 조직은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돈이 아니라, 사고와 실행으로 한 번 풀어봅시다.”
이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느리고 불편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람의 판단력과 실행력을 키우고, 조직의 기준을 만들어 줍니다.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가장 쉽습니다. 그래서 많은 조직이 예산이 생기면, 가장 먼저 돈을 쓰는 방법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돈으로 해결된 문제는 조직에 남지 않습니다. 높은 목표에 작은 예산이 결합될 때, 조직은 어쩔 수 없이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어떤 가설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이 경험을 다음에는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아이디어는 두가지더라고요. 예산을 통해서 만들어 낼 수 읺는 것과 예산이 없어야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산을 이유로 아이디어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배운 것은 '아이디어는 고민하고, 시도하고, 피드백을 남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잔다.' 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산의 크기가 아니라, 리더가 무엇을 양보하지 않기로 결심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돈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하는 문화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