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 가족들과 여행지에서 낮에는 수영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저녁에는 모여서 대화를 나눕니다. 이때 의사결정과 행동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네요. 아내가 보기에는 제가 결과주의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목적주의자 라고 저를 설명해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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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더 똑똑해졌는데, 왜 일은 느려질까요?
회의실을 나서며 많은 구성원들이 비슷한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자료는 충분했고, 분석도 완벽했는데… 왜 결론은 없지?”
"이 회의를 하는 이유가 뭘까? 바뀐 것은 없고 시간만 쓴 것 같아요"
요즘 구성원들과 조직은 저희 때와 비교해서 분명 더 똑똑해졌습니다. 데이터는 넘쳐나고, 인사이트를 반영한 보고서는 정교해졌고, AI는 몇 분 만에 전략 초안을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사결정의 속도는 더 느려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더라고요.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구조와 기준에 따라 더 늦어지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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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정보가 부족해서 결정을 미뤘다면,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결정을 미룹니다. 더 정확해지고 싶다는 마음,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 혹시 모를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하고 싶다는 욕심이 겹치면서 결정은 점점 뒤로 밀립니다.
AI는 지식을 끌어 올려줬고 속도를 높여줬지만,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냅니다.
“이 데이터는 충분한가? 다른 팀의 의견은?”
"이렇게 실행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 사이 시간은 흐르고, 시장은 변화하고, 누군가는 나보다 더 빠르게 실행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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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많은 정보보다 더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빠른 조직과 느린 조직의 차이는 여기에서 발견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신제품 파일럿을 준비하던 두 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A팀은 완벽을 추구했습니다. 시장 조사, 사용자 인터뷰, 경쟁사 분석, 리스크 시나리오까지 준비했습니다. 이해관계자 회의는 세 번이었고, 의견을 반영하느라 기획안은 네 번째 버전까지 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출시 시점은 3개월 뒤로 밀렸습니다.
B팀은 기준을 먼저 정했습니다. “2주 안에 사용자 반응 100건 확보, 긍정 피드백 60% 이상이면 진행.” 이 조건이 충족되자 바로 실행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다음 버전’으로 넘겼습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시장 반응은 빨랐고 학습도 빨랐습니다.
두 팀의 역량 차이가 아니라, 결정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였습니다.
속도를 높이는 방법은 ‘더 빠른 실행’이 아니더라고요.
많은 리더가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실행을 독려합니다. 하지만 실행을 재촉하기 전에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 목적
'이것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결과물은 무엇인가?' - 결과물
언뜻 비슷해 보이는 이 두가지 질문은 '목적'과 '결과물' 이라는 결론을 얻어내는 다른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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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은 의미와 가치를 말합니다. 그래서 정성적으로 표현되죠.
'성장 경험' '고객 감동'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숫자로 정리한 것이 바로 결과물입니다. 'NPS 점수 80, Best Practice 20개'
물론 목적과 결과물은 하나의 패키지입니다. 목적에 다가서는 결과물이 정리되어야 하거든요.
100% 달성 가능한 결과물에 도전할 때 조직은 쉽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방법을 설계해야 하거든요. 대신 목적이 명확하면 우리는 조금 더 쉽게 도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실행과 피드백을 통해 조금씩 결과물을 수정해 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의사 결정은 가설에 가깝습니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빨리 실행하며 이전과 다른 지식과 경험들을 배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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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성과 평가 시즌의 1ON1
연말이 되면 많은 조직에서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평가 결과를 앞두고 리더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번 1ON1에서 성과 등급과 보상 구조를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 결과물 중심 질문 → “이번 대화에서 무엇을 설명해야 하지?”
☆ 목적 중심 질문 → “이 대화가 끝난 후, 이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남아야 하지?”
이때 의사결정의 기준이 결과물에만 맞춰지면 대화의 방향은 빠르게 정해집니다.
- 점수는 왜 이렇게 나왔는지
- 어떤 항목이 부족했는지
- 내년에는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대화는 정교해지고, 설명은 논리적이지만 많은 팀원들이 이렇게 느낍니다. “알겠는데… 힘은 더 빠진 것 같아요.”
반대로 목적을 먼저 정의한 리더는 질문이 조금 다릅니다.
“이번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 팀원이 자신의 성장을 이해하고, 다음 한 걸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
이 목적이 정해지면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 이번 평가를 통해 본인이 잘한 한 가지를 명확히 인식하게 한다
- 부족한 점 하나를 다음 분기의 실험 과제로 정리한다
- 보상 결과는 설명하되, 1ON1 대화의 중심에 보상을 두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 1ON1의 결과물은 ‘평가 설명을 정확히 했다’가 아니라 ‘팀원이 다음 행동을 스스로 정했다’가 됩니다. 같은 제도, 같은 평가표였지만 의사결정의 기준을 결과물에 두었을 때와 목적에 두었을 때, 대화의 질과 이후 행동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리더의 역할은 항상 결과물을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목적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 목적에 맞는 결과물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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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정답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죠. 지금은 고민하는 만큼 경쟁자들이 먼저 실행하면서 고객에게 다가가는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