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스타워즈를..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 엄마 생각.

by 엘리

스타워즈를 멕시코에서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앞 일은 함부로 예측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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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들을 꺼내면 '아 나이 드러난다'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이가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기억의 서랍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추억할 재산이 많다는 얘기라서 난 무척 좋다.

물론 자신의 생생한 기억을 갖고 으시대는 꼬락서니는 딱 별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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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스타워즈는 영화를 무척 좋아하던 엄마와 단 둘이 데이트를 한 기억 중 하나이고 엄마의 흥분이 내게도 전이되어 덩달아 너무 기뻤던 날의 기억이고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혹은 돌아가셨을지도 모를 엄마를 가장 행복하게 떠올릴 수 있는 최고의 기억거리이다.

비록 어린 딸이지만 함께 극장 나들이를 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도 꽤 즐거운 일이었으리라.

'네가 더 크면 더 많은 영화를 보러 가자.'라는 그녀의 말은 지켜지지 않았고,

'네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너도 엄마를 이해하게 될거야. 그 때는 우리가 만날 수 있을거야.'라는 말도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없었고,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추구했던 한 사람으로 한 여성으로

독립적이고 로맨틱하게 살고 싶어했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70~80년대 한국에서

재주 많고 사교적이고 주부여도 자신을 가꾸기 쉬지 않던,

아름다웠던 그녀가 두 아이와 완고한 남편이 있는 가정이라는 틀에서 얼마나 답답했을지 혹여 남의 일이었다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는 것을..

떠나기 전에 수시로 보았던 엄마의 멍때림과 한숨과 비밀외출을 보아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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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스타워즈를 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에피소드 4편.

스타워즈라는 영화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77년이라는데

내 기억엔 초등(국민이겠지^^)2학년 여름이었다.

그때면 1978년인건데 찾아보니 1년 늦게 개봉한 것이 맞더라.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 앞엔 그 블럭을 크게 도는 아주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흥분으로 그 지루함을 달래며 엄마와 나는 표를 사기 위한 줄에 섰다.

그 시간 내내 나는 종알거렸다.

아카데미에서 상을 몇 개 탔고 분장은 어떻게 했고를 마구 주워 섬겼던 것 같다.

9살짜리 스타워즈 오덕이라니..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게 내 어린날이었던게지.

영화덕질을 고등학교때 마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창피해.. 아는척쟁이라니..

여튼 우리 앞 뒷줄에 함께 줄을 서 있던 젊은 연인들은 꼬맹이의 수다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엄마에게 귀엽다고 신기하다고 칭찬을 연발했고 엄마도 그 상황을 조금은 즐긴듯.

아이에겐 너무도 지루하고 길고 긴 시간이 지나 드디어 극장에 들어서고.

팝콘과 구운 오징어냄새가 그득한 극장 안에는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느끼는 긴장과 흥분의 그 느낌이 내게도 너무 크게 전이되어

영화가 시작될 때 웅장한 음악과 함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타이틀롤을 보며 벅찼다.

에피소드4가 시작되었고.

첫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거칠고 드넓은 사막에서 C3PO와 R2D2가 서로 투덜거리며 어딘가를 찾아가는데....

난 생애 최초로 '절망'이라는 감정을 크게 경험했다.

오른쪽에 세로로 씌인 자막을 읽어야 하는데

나의 글읽기 실력으로는 그 자막을 다 읽을 수 없었던 것.

너무 알고 싶은데 자막을 다 읽기도 전에 화면은 바뀌고 자막은 없어지고

울 뻔 했다.

하지만 이해도 잘 안되는 자막을 읽으려다가 화면을 놓치는 것은 너무 아까워서

그저 꾹 참고 그림만 보기로 했다.

그래도 이해가 잘 안되다가

츄바카가 소리를 지르면 무섭고

한 솔로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시니컬하게 웃으면 괜히 안심되고

루크의 고생길이 너무 불쌍하고

레이어공주의 너무 파격적인 헐벗은 의상에 깜짝 놀라고

(그 날 나의 여자우상은 원더우먼에서 레이어공주로 바뀌었다)

빨려들듯한 우주비행선의 공중전씬에서는 흥분한 끝에 벌떡 일어나서 감상을 하고 있었다.

영화는 뭔가 마무리를 잘 안한듯 끝이 났고

난 R2D2를 더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에 극장을 나오며 새로운 세계를 접한 흥분에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오가다가 R2D2 로봇장난감을 보면 무척 갖고싶었지만, 난 동생이 있는 아이니까 먼저 무얼 사달라고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앞섰던 기억이 있다.

동생은 R2D2를 받았고, 난 함께 갖고 놀았다.

그 후 스타워즈 시리즈가 개봉 할 때마다 보았지만 그 첫번째의 감동에는 미치치 못했고,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해리슨포드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행보를 못보이고.

급기야 캐리피셔가 약물중독으로 치료중이라는 뉴스를 일본판 스크린에서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를 우상으로 삼는다는건 정말 유치한 일이다라는 결론을 안고 친구들을 비웃으며 십대를 보내고

사회적 질풍노도의 시기에 데모현장과 클럽을 오가는 이중생활의 이십대를 지나

스타워즈의 새로운 시리즈가 돌아왔다.

남동생과 나중에 올케가 된 여친과 함께 본 기억인데 뒷자리의 커플이 너무 떠들어서 남동생이 욱하는 바람에 싸움이 날 뻔한 상황이 조금 우스웠다.

내게도 예전같은 감동은 아니어서 나올 때마다 그저 그 때 그 때 소비하고 치우는 간식같은 영화로 전락했구나 하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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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

페루에서 와 있는 Andres Cordero 와 근처의 씨네맥스에 영화를 보러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살짝 기대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모르겠다.

안그래도 극장요금이 비싸지 않은데 어제도 20주년이 뭐 어쩌고 하며 할인을 해서 33페소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막상 가니 회원증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도 한 사람당 49페소(3,360원 가량)니 부담은 없는 가격인셈.

안드레스는 영화를 보기 위해 안경을 끼더니 더 스마트해보이냐고 묻는다.

스티브잡스 같다고 해주었다.

내 립서비스도 많이 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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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리즈는 친근한 남주와 멋진 여주를 과거 주인공들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었다.

틈틈히 보이는 영화적 개연성의 구멍들이야 애정어린 내겐 귀엽기만..^^

R2D2에서 BB8로 애정전선이 넘어가긴 했으나, (아.. 이렇게 귀여운 드로이드라니..)

R2D2의 콩탁콩탁 뛰는 모습을 멀찌감치 아주 작은 모습으로 확인하며 내 아홉살의 심장도 다시 뛰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안드레스도 나도 동시에 찌찌뿡~

'BB8 갖고 싶어!'

https://youtu.be/9nuNZy24d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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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리슨 포드가 등장했을 때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캐리피셔의 등장에 나는 깊게 감추어져 있던 어떤 감정이 끌어내어지는 것을 느꼈다.

우상의 몰락과 그것을 외면하고 잊으려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그녀는 그저 그렇게 존재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이 참 흔하지 않은 감정이어서

어떤 고마움까지 느끼게 되더군.

마크 해밀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깊은 회한과 감상과 내려놓음이 보이는 그 눈빛.

배우들이 살이 찌고, 늙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삶과 함께 해 온 스타워즈 시리즈에 대한 깊은 애정이 그대로 드러남은 연출과 연기와 온갖 기술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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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타워즈가 누군 좋았다 누군 싫었다의 문제가 관건이 아니다.

영화를 잘 만들었고 못 만들었고의 문제도 관건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학자와 평론가들의 몫이다.

물론 그들도 배제하지 않을 의미 하나는

이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무척 '개인적'인 영화라는 것이고

감독과 배우와 스텝들 모두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잘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의미 하나가 내겐 전부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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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 스타워즈를 볼 수 있을까. 보았을까.

살아계시다면 티비는 계속 보실텐데

이 영화의 광고가 관련뉴스가 나올 때마다 당신의 어린 첫 딸과 함께 했던

그 여름의 종로거리를 기억할까.

모두 잊었어도 괜찮다.

나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사랑으로

애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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