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HABANA에서 띄운 단상 #4 그곳에서 만난 나의 차별
길을 가다가 팔이 없는 장애인을 보았다.
지나가는 나를 보며 여지없이 ‘치나~ 린다~ 흐흐흐’하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깜짝 놀랐다. 이상하게 다른 이들이 인사를 할 때와는 달랐다.
내가 느끼는 이 특별한 감정의 반응은 무엇인가.
저 사람에게 한쪽 소매는 필요가 없겠군.
어딜 가는 길일까 어떻게 살까 힘들게 살진 않겠지. 장애인 복지는 어느 정도 일까.
이런 드라이한 생각 이 전에 드는 그 ‘놀람’은 무언가.
그는 쿠바노다. 여지없이 쿠바에서 평생을 살아온 남자다.
여자를 보면 인사하고 예쁘다고 하고 아이를 보면 귀엽다고 하고 동네 사람들과 구성원의 하나로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왜 나는 다른 쿠바노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가.
왜 놀라는가.
키가 아주 큰 트랜스젠더가 자신보다 약간은 왜소한 애인과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자연스레 눈이 갔고 관찰을 했고 계속 지켜보는 게 멋쩍어서 흘깃거렸다.
그녀는 그 날 한껏 치장을 하고 높은 구두를 신어 키는 더욱 거대해 보였고 충분히 눈에 띄었다.
약간은 남의 시선을 즐기는 듯도 보였다.
시선과 표정에 솔직한 쿠바인들도 그녀를 나처럼 관찰하지는 않는다.
나는 왜 그녀를 유심히 더 보게 되는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쿠바인들은 지난 오랜 기간 동안 흑인과 백인과 약간의 동양인의 피가 섞인 물라토로 지내왔고
아직 남아있는 순수 백인과 흑인들은 그들과 너무도 자연스레, 숨 쉬듯이 함께 살아낸다.
그들간에 문화적 차이도 있고 개인적 차이도 있고 이제는 빈부격차도 생기기 시작하지만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약간 쳐지는 쪽의 상대적 박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차별이 없는 곳.
평등한 사회의 이상향을 이룬 곳.
그럴 것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이미지가 애초에 있긴 했다.
이 곳은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사회주의의 이상을 일부분은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있다고도 들었다.
정작 와서 받은 문화적 충격은 내 안에 있던 차별의식들이 이끌어내 진 것.
누구나 사람은 똑같이 존엄하고 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얄팍한 믿음은 여지없이 깨진다.
철저하게 자본과 계급으로 차별하는 사회에서 살아온 내게
‘나는 평등주의자야’라는 생각만으로는 깊이 젖어있던 차별의식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인정하고 생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그 사람의 옷, 향수, 신발, 시계, 보여주고 싶어 하는 표정.. 에 뺏긴 눈길을 거두어야 한다.
먼저 눈빛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진짜 감정을 읽고 체온을 느껴야 한다.
내가 무시당하기 싫어서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무시당하면 안 되므로, 누구도 누구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상대의 자존감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내 자존감이 박약한데 남의 자존감만 인정한다면 그것은 인정이 아니라 복종에 가까울 것.
내가 나를 존중해야 한다.
한국의 서열 사회가 참 싫었다.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물어보고 많은 이가 본인보다 어린 이에게 반말을 하고
서열 안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그 심리가 싫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상대가 편해서가 아니라 낮 추이 보고 반말을 하려는 자가 존댓말 들을 자격이 있는가.
모르겠다. 서열이 편한 그대들은 그 안에서 편함을 추구하시라
난 그저 인간의 품위에 대해 더 고민하겠다.
존대어라는 아름다운 언어 풍습과 완곡한 표현이라는 편리한 배려 방법을
효율과 이익이 아닌 존중을 위해 사용하겠다.
일 년 넘게 한국어는 존댓말만 하다가 2년여 만에 만난 동생에게 존대를 하니 어색해한다.
헌데 내가 원래 그 친구에게 존대를 했었는지 반말을 했었는지 잊어버렸다.
그냥 기분 좋게 서로 존대를 하기로 했다.
중요하지 않다.
지구 반대편에서 2년 만에 알던 이와 재회한다는 것은
그 우정이 비록 얄팍할지라도 반가움의 크기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므로.
어떤 이들은 내가 공부하기 싫어서 규모가 작은 대학에 억지로 들어가서 다녔고 30이 훌쩍 넘어 방송대를 다녔다거나 파산했었다거나 수입이 변변치 않아서 두세 가지 일을 한다거나 지금은 집도 차도 없어서 월세에 산다거나 그럼에도 본인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면 없던 걱정을 끄집어내며 불안해했고
그들은 또 내가 서울 출신이라거나 어떤 큰 회사들에 잠시 다닌 적이 있다거나 예전에 돈을 좀 벌었었다거나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약간 안심했다.
몇몇 곳을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부럽다라고 하다가
돈이 없이 저렴하게만 다녔고 그 곳의 유명한 리조트는 못 가봤다라고 하면 멋지긴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못 다닐 것이라고 했다.
예전 그 어느 시점에 있는 나와 현재의 나는 둘이 아니다.
같은 사람에 대해 포장을 바꾼 것 만으로도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은 어떤 불안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깊고 깊은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할 양이라면
그 기준을 조금 더 근본적인 것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소멸될 것들에 기대지 말고
모든 것을 다 던져도 던져지지 않는 그 사람만의 것을 찾는 시각에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소멸되고 나서도 남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며 남는 어떤 것 말고 누구도 몰라주지만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