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5일
이사를 했다. 늦은 밤 친구들의 도움으로 짐을 옮기고
전기공사의 사람들을 웃돈을 주고 불러 전기를 살리고 겨우겨우 옮겨왔다. 당분간-1년은- 버틸 수 있는 곳을 마침내 찾게 된 것은 플라비오의 커다란 도움으로 비롯된 나의 행운.
지난 3월 마지막 손님들이 떠나고, 6월엔 한 명 남은 스태프도 그리고 함께 민박을 지키던 친구마저 떠나고.
그 후로 두 채에서 한 채로 줄인 그 집을 내리 지키고 있었다.
흐름과 나의 분석은 그랬다. 10,11월이 되면 항공사들은 다시 대륙간 비행을 재개할 것이고.
각국의 확진자 숫자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봉쇄는 더이상 불가능할 거라고. 그래서 여행은 재개할 수 밖에 없을거라고.
나의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코로나의 시작이 그랬듯이 변수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타이밍에 무겁게 들이밀었다.
비행기는 다시 떴다. 북미는 말할 것도 없이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원래 다니던 노선중 다수의 비행기는 다시 띄워져 칸쿤으로 들어왔다.
다만 한국은 8월부터 믿을 수 없는 변수가 생겼다. 그리고 여행에 대한 아무런 배려도 없는 답보상태가 계속 되고, 9월까지 빈 집에 월세를 감당하던 나는 그냥 빈 주머니를 찰 수 밖에. 집주인의 할인도 있었고 한국에서의 공수도 있었지만 6개월간 두 팀의 숙박 예약으로 버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이제 한국인은 언제 여행을 나올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고 그에 무심한듯 이 지역의 여행 인프라는 정상을 향해 돌아오고 있다.
경제적 정상화를 바라는 많은 나라들은 다시 확진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 두 번째 판데믹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그 대처를 무조건적인 발묶음에서 찾지는 않을 듯하다. 백신이 공급되기는 될 모양이고, 대부분 경제활동 중지에 따른 경제적 위축을 전염병의 확산보다 더 무서워하는 모습이다. 옆에서 환자가 발생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더 큰 두려움이 있는 것. 경제활동을 못하게 될 때 다수의 사람들이 갖는 불안감과 우울. 그것이 더 큰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여행 할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이 곳에 여행자가 다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이미 7월 바캉스철 부터다. 전에 없던 새로운 사실은 미국에서 넘어오는 항공권과 이 지역의 호텔들이 대거 할인 프로모션을 걸고 있는 바, 평소에 여행을 꿈꾸지 못했던 계층의 사람들이 여행을 나와 이 지역을 즐기고 있다. 누구든 한 눈에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여행을 많이 해보지 못한 티를 해맑은 얼굴에 가득 담고 기대감에 눈을 반짝이며 거리를 다닌다. 아무리 코비드가 음모라고 생각해버리는 사람일지라도, 칸쿤공항에 들어오자마자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를 모두 착용한 현장 종사자들을 보면 생각이 환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가한 호텔에 저렴하게 묵으며 사람이 줄어 더욱 푸르른 이 지역의 자연환경을 맘껏 즐기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은 확진자 수로 너무 과하게 대처한다고 한국에 투덜댈 일이 아니다. 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은, 특히 한국은 봉쇄정책을 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잘 대처하고 관리하고 있는 데다가 각 국의 국민들이 잘 협조하는 것이 확연히 눈에 보인다.
이사 직전 빈 방을 좀 렌트 할 수 있겠냐는 말에 미국인 몇에게 단 며칠씩이지만 방을 내주었었다. 소액이어도 어쨌든 인컴이니 이사할 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들중 하나는 내 얼굴 50센티 앞에 날숨을 내뿜으며 이런 상황을 믿을 수 있냐고, 뭔가 다른 의도가 있어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 아니겠냐고 본인이 듣고 싶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렌트 해 들어온 친구를 만나러 놀러온 친구들도 병균의 흐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었다. 물론 내가 알콜젤이 든 병을 들이밀면 협조적이긴 했지만, 순간 그들의 눈길에 서운함이 비췄다. 자유롭게 마음대로 편하게 지내던 생활방식을 바꾸고 뭔가 더 행동해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 느껴졌다. 대부분의 경우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고 대충 ‘못알아듣지만 대답하기 싫다’는 뜻의 어깨짓만 보여주고 자리를 피했다. 빨리 자리를 떠서 내 방에 칩거하고 싶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온 집안의 손잡이와 스위치를 소독하는 내 모습을 알았다면 그들도 다른 맥락에서 인류애가 사라졌을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러나 정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가능한 이 외진 곳으로 이사오면서도, 플라야를 떠난다는 서운함을 많이 덜어준 것이야말로 그들의 생활태도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인 것.
간간히 들리는, 한국에서 누군가 마스크를 안쓰겠다고 뗑깡을 부리고 사람을 때리고 했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숫자는 말을 하니까. 얼마나 전국민이 협조적인지. 그리고 10월 말이 되어 훅 늘어난 프랑스의 숫자를 보며 그들의 위생관념에 대해 다시 확인하고 진저리 친다.
그리고 나는 이제 무얼 해야하나.
여행이 사람 본능의 일부인 것을 알아버린 바, 여행업의 방향이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여행이 멈춰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 역시 신종플루 처럼 언제나 곁에 있고 대처할 수 있는 질병의 하나로 고착화 될 것을 안다. 그리고 전 지구인들은 경제활동을 정상화 하지 않고는 스스로 견뎌낼 수가 없다. 멕시코의 확진자수는 100만명을 향해 매일 수천명씩 늘어나고 있다. 사망자는 10% 가량. 전체 검사자에 비해 반 정도의 인원이 확진자로 분류된다는 것은 역시 숫자가 말하듯 많은 유증상자들만 주로 검사를 받는다는 말이고, 생활전선에 몰린 많은 무증상자들이 계속 일하고 있다는 말이다. 숨쉬는 것마저 두려울 수 있지만, 짧은 병원근무의 경험상 어떤 전염병이든 현대의 상식적인 방법으로 차단은 가능한 바, 방역을 철저히 생활화하고 있다. 이는 이 지역 여행산업에도 큰 습관의 변화를 가져와 어디서든 손을 소독하거나 씻을 수 있고, 어디서든 마스크를 써야 하며, 서비스업 종사자의 대부분은 페이스쉴드를, 이 더운 날에도 착용하고 근무한다. 사람은 무서운 적응의 존재인 것이고, 생활방역의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여행해야 하는 당위성이 매우 강조되는 현실인 것. 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현재 이 지역에 놀러오는 많은 미국인, 유럽인 젊은 친구들은 마냥 해맑게 놀러다닌다. 누구의 탓을 하랴, 그저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최선인 것을. 세노테의 경우 잠시 문을 닫고 모두 엎드려 있다가 6월에 재개장한 이후로 간간히 찾아갈 때마다 항상 누군가는 수영하고 누군가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즐길 사람들은 조용히 즐기고 다니는 것.
다시, 포기를 모르는 나는 무얼 해야하나.
여행업을 놓지 않을 거고 길게 3년, 짧게 내년 후반부터 여행자가 다닐 수 있다고 상정하고 있었다.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과 최고급 호텔과 단독투어로 구성한 럭셔리 투어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 계층의 사람들이 비교적 손쉽게 여행을 선택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다가 고맙게도 마침 상품을 다시 만들어보자는 친구의 현실적 제안에 럭셔리 투어의 지역과 숙소와 일정을 조정해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었다. 고맙다 친구 @wongeemax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 디자인 작업이 끝났고 마이리얼트립에 심사중이다. 또 수정에 대한 피드백이 들어왔는데.. 모든 파일에 손을 대야 하는 상황인 것.
한 숨 크게 쉬고 다시 처음부터 수정작업에 들어간다.
참고가 된 사실들은
*인천-멕시코시티 간의 직항노선이 이미 여름부터 주 2회 매주 다니고 있다.
*멕시코는 입국자의 자가격리가 없다.
*확진자 숫자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은 여타 주에 비해 이 곳(킨타나로오, 유카탄주)는 상대적으로 확진자의 숫자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워낙 인구밀도가 낮은 곳이어서 사람들과 부대낄 일이 거의 없다.
*모든 유적과 관광지, 특히 세노테들이 재오픈했고 그룹 관광객 10명 미만의 룰에 따라 대형 단체 관광객이 전무한 바, 오히려 놀러다닐 환경은 더욱 쾌적해졌다.
무엇보다 나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평화롭게 놀러온 북미와 유럽의 친구들의 표정을 보면서 이 곳에서 한국인 여행객을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거리가 먼 일본, 중국계 여행객도 만나기 힘든 것은 똑같지만 한국인 여행자들도 이 곳에서 저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다니고 싶을 텐데.. 나는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맞다.
불안감에 여행의 발걸음을 주춤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불안을 풀어줄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꼭 나의 고객은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이 시기에 이 곳을 다녀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멕시코 좀 무서운데, 코로나 무서운데’ 하면서 여러가지 질문 보따리를 풀다가 막상 도착해서는 행복하게 즐기고 무사히 귀국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하게된다. 한 편, 나오고 싶어도 불안함에 못나오는 사람들을 향한 막막함을 감출 수가 없다.
당연히 여행 나오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자기 스스로를 병균으로부터 지키라고 말하곤 하지만, 나와도 된다고 말한 후에 여행나왔다가 자기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내가 책임질 수도 없다.
‘비행기 다닌다는데 지금 여행이 가능할까요?’ 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이것저것 많은 조건들이 잔소리처럼 따라붙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현재 한국에 있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괜찮으니 멕시코 놀러오라고 적극적으로 말 할 수 있는 입장은 전혀 아닌 것.
대체로 간간히 현재 문의를 하는 사람들은 일이 있어 미국이나 멕시코에 오게 되었거나 이쪽 대륙에 살고 있는 교민들 뿐이다.
다만 나는 그들이, 전 세계에서 모인 젊은 여행자들과 섞여 호기심 가득한 채 반짝이던 그 눈빛들이, 매우 그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