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에서 날숨

2015 HABANA에서 띄운 단상 #2 쿠바인들의 사랑

by 엘리

마늘을 사러 숙소 앞에 잠깐 나갔다.

1 뿌리에 5페소. 250원 꼴이다. 멕시코나 쿠바나 마늘은 다른 야채에 비해 그다지 싸지 않다.

시장이나 노점이나 가격은 같아서 야채는 되도록 집 근처 노점을 이용한다.

손에 마늘을 들고 (노점엔 봉투가 없다. 비닐봉투를 지참하고 가야 하는데 깜빡했다.)

다른 손에 담배를 들고 걸어오는데 마르고 키 큰 흑인 아저씨가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하며 뭐라 한다.

담배를 달라는 줄 알고 없다고 하니 본인의 담배를 꺼내며 불을 빌려 달라는 얘기였다.

라이터가 없어서 내 담배를 빌려주었다.

불 붙일 생각은 안 하고 수다를 떤다.

이름은 뭐냐.

어디서 왔냐.

한국인 너무 좋다.

어서 붙이고 달라고 하니 불을 붙인 후.

아이가 있냐고 묻는다. 없다고 하니 본인도 아이가 없다고.

내게 너무 착하다고. 자기는 무언가(못 알아들었다) 파는 일을 하고 본인의 집은 아주 크단다.

자기 집에 가보지 않겠냐고.

실소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웃으니 뭔가 긍정적인 뜻인 줄 아는지 더 적극적이다.

은근히 팔을 만지려고도 하고.

속으로 저리 꺼지라는 말이 뭐였더라 떠올리는데 생각이 안 난다.

또 다정하게 다가오는 순딩이 들에게 미국에서 처럼 시크하게 ’ 꺼져’ 하는 것은 좀 안 맞나 싶기도 하고.

난 간다 하고 돌아서 오는 내 뒤통수에 계속 떠든다.

‘나 너 너무 좋아해.

너 마늘 4개 있지?

난 8개 줄 수 있어.

또 봐, 내 사랑!’

길 한복판에서 빵 터질 뻔한 웃음을 삼키며 숙소로 돌아와 혼자 웃는다.

한 편으로는 귀엽기도 하지만 막상 현실에 혼자 그런 상황에 부딪히면 살짝 긴장되고 겁도 난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내가 본 쿠바인들은 그렇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작은 소녀가 길을 지나가다 동네 청년들이 몰려 있는 곳을 지나려고 파고들면 그냥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 예쁘다 하며 청년들의 볼뽀뽀 세례를 감당하고서야 지나올 수 있다.

이를 단체 성추행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여자들은 어릴 적부터 길을 지나가기만 해도

예쁘다.

아무개야 예뻐졌네.

오늘 옷 멋지네.

이런 소리를 내내 듣는다.

그래서 쿠바나들이 초면에는 웃지 않는다. 그녀들이 시크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

그리고 콧대도 높고 자존심도 세고 정말 본인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누구에게나 들이댄다는 건 누구에게든 자신이 있다는 것.

우리는 돈이 많거나 좋은 차를 뽑았거나 나름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었거나

하여튼 어떤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자신감이 비로소 생기기 쉽다.

하지만 자신감은 그 어떤 조건이 충족되건 충족되지 않건 그저 생각하고 마음먹기 나름인 것이고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그대로인데

어떤 때는 자신감이 충만하고 어떤 때는 자신감이 소멸하게 된다는 것은 단지 느낌일 뿐인 것 아닐까.

외국의 여자들이 쿠바노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물론 그들이 여자를 매우 사랑하고 아끼고 항상 여자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매너가 좋고 사랑스러운 표정과 잘생긴 외모 때문이지만

그 모든 것을 앞서는 것이야말로 쿠바노의 자신감이 아닐까 한다.

할 줄 아는 말은 쿠바식 에스파뇰뿐이고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차도 없고 옷도 유럽에서 넘어온 세컨드 핸드를 몇 년째 빨아서 입고 있지만

그들은 항상 자신감에 차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자신감.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가.

결핍에서 오는 곤궁함, 지질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만일 다른 세계의 여자들이 어떤 쿠바노에게 홀딱 반했다면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라도 납득할 것이다.

그는 인간적인 자신감 하나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어떤 형태로든 살아내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사랑을 하지만 알고 보면 부인과 애가 있더라...... 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고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언제나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쿠바노에게 여행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 여행자는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해 줄 엘리베이터 이거나

조금 길어야 몇 주, 그 여행자의 여행기간 동안 좋은 애인과 가이드가 되어 쿠바 생활에서 도움을 주고 약간의 돈을 받을 수 있다거나

혹은 사귀어 보지 못한 나라의 여자와 연애를 해 보았다는 자랑거리.

물론 개중에 진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나,

혹여 그 여행자와 결혼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사랑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에 모두 이유가 있을까.

기간이 짧건 길건

그 마음이 모두 진짜일까 아니면 목적을 위한 연기인 것뿐일까.

매번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고백을 받고 ‘됐어요’하며 남자를 차 버리는 것이

이 곳에선 이틀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일인 것인데.

마음은 진짜인 듯하다. 아무리 짧더라도 말이지.

그들의 자신감이 진짜이듯.


이들이야 말로 마음 흘러가는 대로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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