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I
최근 아마존은 자사 웹사이트의 상품 추천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아마봇(Amabot)이라는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아마존 내에는 이용자들이 선호할 만한 제품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내용을 작성하는 편집 팀과, 서비스 자동화를 위한 머신러닝 개인화(Machine Learning Personalization) 팀 간의 다툼이 있었다. 아마봇의 도입은 서비스 자동화를 선호하는 개인화 팀에 의해 이루어졌다.
편집 팀은 전통적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방법으로 제품을 '큐레이션'해 왔다. 에디터들이 가진 경험과 판단 기준을 바탕으로 제품에 스토리를 부여함으로써 이용자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이다.
아마존은 맨 처음에 온라인 도서 판매점으로 출발했고, 창업자인 베조스는 아마존 이용자들이 작은 독립서점 같은 분위기 속에서 독특하고 희귀한 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편집 팀을 출범시켰다. 이후 사업이 확장되면서, 편집팀은 책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상품에 대해 같은 접근법을 취해왔다. 이러한 접근은 아마존의 매출에 분명히 기여해왔다.
아마봇 도입 후 얼마 뒤, 편집팀 소속 직원 대부분이 해고 또는 전출되었다. 개인화 팀 사무실 벽에는 "사람들은 존 헨리가 결국은 죽었단 걸 까먹는다"라고 적혀 있다.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미국에서 존 헨리는 증기기관차와의 땅파기 대결에서 승리한 직후 숨을 거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글귀에다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사람들은 아마봇의 도입이 2001년의 일이었단 걸 종종 까먹는다, 고.
2001년 아마봇 도입 이후 아마존 상품 큐레이션은 컴퓨터의 업무가 되었다. 2020년 현재 아마존의 '오늘의 딜(Today’s Deal)' 탭을 누르면, 상품 판매자들이 올린 상품 이미지와 기본 정보만이 노출된다. 그러니까 아마존의 알고리즘 기반 구매 권유 전략은 도입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전략이라기보다는 전통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2001년 아마존의 매출은 31억 2천만 달러였다. 당시 환율을 고려하면 우리 돈 4조 원 정도다. 2019년 국내 1위 이커머스 업체는 쿠팡으로, 거래액은 13조 원으로 알려졌고, 매출은 6조 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매출은 얼추 비슷하다.
건조하고 써늘하기 짝이 없는 알고리즘 기반의 제품 정보만 가득한 아마존의 진열대와 달리, 쿠팡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여전히 '봄맞이 산뜻하게 집 꾸미기'라는 문구가 햇살 드는 거실을 배경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고객에게 다가갈지는, 물론 경영인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보는 것은 경영자들과 직원들의 '노력'이 아니다. 그들은 손가락을 몇 번 퉁기는 것만으로 온라인 스토어에 들어가서, 진열대를 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골라서 주문한다. 결제정보를 등록한 회원에게 이 과정은 5분도 안 걸린다.
이 5분을 위해서 홈페이지에 걸어둘 배너 하나를 만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보자. 판매업체의 광고 요청과 이를 처리하기 위한 회의, 디자인 기획, 시안 제작, 확정, 웹사이트 게시를 위한 개발 과정에는 며칠 혹은 몇 주가 걸릴 수 있다.
알고리즘의 추천 과정은 얼마나 걸릴까? 물리 서버 어딘가에서 전기 신호로 존재하는 알고리즘은, 우선 이용자들의 구매 이력을 크롤링하고 처리한다. 그다음 예측모델에 맞게 온라인 진열대에 있는 상품 중 고객이 흥미를 가질만한 것을 노출시킨다. 이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정말 보수적으로 길게 잡으면 1천 밀리세컨드 정도, 그러니까 1초쯤일 것 같다.
상품 진열을 누가 더 잘하는지를 놓고 토론을 벌일 수도 있다. 배너를 만드는 디자인 팀과 구매이력 기반 추천 알고리즘 중 어느 쪽이 더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할까? 판단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잘 작동하는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데에는 많은 엔지니어와 연구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마존은 에디터들이 하던 상품 큐레이션 서비스를 18년 전에 끝장냈다. 2001년 당시 독자 님의 나이를 생각해보시길 권유한다. 다시 2020년의 나로 돌아와서, 아마존과 쿠팡의 메인 화면을 비교해보라. 어떤 느낌이 드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쿠팡은 추천 알고리즘을 활용한 상품 추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기업이고*, 매출 증가는 그 결과일 것이다. 업계 1위이지만 적자에 시달리는 모습은, 심지어 아마존의 초기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쿠팡 홈페이지 메인화면에서 나를 맞이하는 '예쁨 레이어링 원피스'와 '손질 오징어 12% 할인' 배너는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전략적 판단의 결과물로 보인다. 국내 대형마트 시식 코너가 시식 제품 자체의 매출 상승 못지않게 마트를 다시 찾게 만드는 강력한 브랜드 효과를 노리는 것처럼, 배너 이미지는 쿠팡이라는 이커머스에 대한 심상(image)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원피스와 오징어는 다 계획이 있다.
요컨대 기업에서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란 인간의 역할을 축소시키거나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더 효율적인 기업 운영과 나은 판단에 도움이 되는 디지털 도구를 채택하고 활용하는 일이다. 따라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지향점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업도, 개인도 늘 지향해온, 지속적인 혁신과 변신의 연장선 위에 있다.
어린 시절에 봤던 교과서에 따르면 세계 경제는 다음의 3단계를 거쳤다. 먼저 18세기 전후에 유럽에 산업사회가 등장했다. 다음 두 번째로, 산업사회는 생산력이 빠르게 늘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또 많은 시간이 흘러서 세 번째로, 산업구조가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요구도 다양해져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바뀌었다.
체제와 생산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로 두루뭉술한 역사적 기술들을 암기하는 동안에도, 한 가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세상은 복잡해서 혼자 다 해 먹을 수 없구나!' 그 후로 아주 점진적으로 분업, 생산 유통망, 글로벌 경제, 금융과 같은 것들이 다 '혼자 해 먹을 수 없는 구조'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자메시지를 대체하는 국민앱 정도겠거니 했던 카카오는 포털 사이트를 인수했고 은행을 설립했다. 카카오 팝업스토어에서 라이언 인형을 만지작거릴 때 카카오가 물건을 생산하는 곳인지 유통하는 곳인지 아니면 원래 IT기업이었는지를 생각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 파는 기업인 척했던 아마존은 달 정복을 공언했고*, 구글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두 기업 모두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는다).
정신 차려보니 소품종 대량생산 사회는 벌써 30년도 넘은 얘기가 됐고, 1개의 거대 기업이 거의 모든 재화를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흔한, 거대 기업에 의한 다품종 대량생산 시대가 도래했다. 물론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은 전문 영역을 갖고 있고 시장도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려던 참에 코로나가 등장했다. 이 태풍이 지나가고 누가 남을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낙심하기에는 이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지 수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조직에 적합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방법을 찾아서 적용한 사례가 여전히 희귀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구글과 카카오 같은 거대 기업의 정보기술 능력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당신에게 맞는 옷이 아닐 수 있다.
이어지는 글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도입한 가까운 기업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당신의 기업에 맞는 옷은 무엇일지, 한 번 골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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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 사진 / Wikimedia
* 2019년 국내 1위 이커머스 업체는 쿠팡으로, 거래액은 13조 원으로 알려졌고, 매출은 6조 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쿠팡은 추천 알고리즘을 활용한 상품 추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기업이고, 매출 증가는 그 결과일 것이다. 업계 1위이지만 적자에 시달리는 모습은, 심지어 아마존의 초기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