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II
그레고르 잠자가 지독한 꿈에서 깨어난 어느 날 아침,
그는 침대 속에서 흉측한 벌레로 변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1915년 발표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벌레로 변한다는, 지극히 SF적인 설정에서 출발한다. 소설은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가 살아남고자 벌이는 외적, 내적인 투쟁을 섬뜩하리만큼 생생하게 그려낸다.
놀랍게도 그 서사는 주인공이 벌레로 변했다는 것만 제외하면,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꽤 현실적이다. 나는 여전히 쓸모 있는가?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신을 향한 의심과 채찍질은 현대인의 지긋지긋한 친구다. 우리가 스스로를 벌레로 여기지는 않겠지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끝에 느껴지는 씁쓸함이 <변신>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COVID-19가 창궐했다. 바이러스는 지금 이 순간에 전쟁보다 빠르고 테러보다도 강력하게 전 세계를 할퀴고 있다. 우리가 믿어왔던 안정적인 세계, 기존의 체제가 사실상 벌레처럼 변신해버렸음을 우리는 생생히 목격하는 중이다.
전 세계의 공급망이 마비되고,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경제가 휘청거린다. 그레고르의 슬픔이 이제 더 이상 고독한 개인의 몫이 아닌, 전 세계가 맛보아야 할 씁쓸한 현실로 닥친 것이다.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들은 앞다투어 엄청난 양의 금액을 시장에 투하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는 2조 달러, 우리 돈으로 2,500조에 달하는 긴급자금 조달에 합의했고, 중국은 이미 한 달도 전에 금리인하로 50조 원 가량을, 그 뒤로도 계속 돈을 풀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은행이 시중 금융사에 전례 없는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시작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불확실성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위기관리 전략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의료 당국의 방역 정책은, 이에 관한 한 가지 힌트를 준다.
우리나라 정부는 코로나 확산 초기에 강력한 출입경 제한, 이른바 락다운(lockdown)이 아닌 다른 방식을 택했다. 대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신속하고 전면적인 감염자 추적과 격리를 시작했고 이것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감염 의심자를 조기에 발견하는 데에는 목숨을 걸고 사투 중인 의료진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한국의 의료체계 덕분이었다. 그러는 동안 정부는 자가격리 중이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곧바로 관련 기관에 접촉할 수 있도록, 10분 단위의 실시간 연락망을 구축했다.* 누가 감염되었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정보와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한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혼란상은 그들의 의료 수준이 뒤처져서일까? 조심스럽게 추론하자면, 현재의 인력과 장비로 대응하기에는 환자가 너무 많아서 의료체계가 붕괴된 탓이 더 크지 않을까? 서구권이 미적거린 까닭 가운데 하나는 추적검사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생활 침해 우려였다.* 우리보다 길고 뚜렷한 국가폭력의 역사를 가진 서구 언론은 새로운 전체주의적 감시체계의 등장을 늘 걱정해왔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확산을 억제할 수 있는 골든아워를 놓쳤다.
정부의 방역조치를 평가하는 일은 다른 이들의 몫으로 남겨놓겠다. 중요한 것은, 자원이 부족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조직(예를 들면 국가기관)이라 할지라도 이미 갖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위기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인공지능, 데이터 관리 시스템, 원격근무 같은 근사한 접근법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접근 가능한 정보를 모으고, 이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 한마디로 접근 가능한 내부 데이터로 외부 리스크를 잡는 일이다.
엘리스의 교육을 도입한 국내 기업 가운데 이를 잘 보여주는 아주 전형적인 사례가 있다.
지난해 국내 A그룹사는 전체 계열사, 전사 직원을 대상으로 기초 코딩 교육을 진행했다. 이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렌터카 업체에서 현장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K 씨 역시 수강자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기초 코딩 교육을 마친 후 렌터카 사고사례 데이터로 뭔가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한 일은 약간의 코딩 지식이 있으면, 단순한 작업이었다. 먼저 이 기록에서 사고 위치 데이터를 추출했다. 그다음. 간단한 코딩으로 이 사고 위치 데이터를 지도에 점으로 표시했다.
K씨는 지도에서 사고 다발지점을 확인하고, 사고 다발지점 근처의 렌터카 대리점에 지도를 공유했다.사고지점을 나타낸 이 지도는 각 대리점에서 활용되었고, 고객에게 관련 내용을 사전고지함으로써 외부리스크를 줄이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녀는 이후 그룹 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을 기획하는 부서로 차출되었다.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자발적으로 제작된 코로나 맵도* 렌터카 사고 지도와 같은 구조를 가진 서비스다. 차량 사고 지점 표시 지도와 코로나 맵 모두 리스크를 시각화함으로써, 조직 내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쓰였다.
전문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입장에서, 두 서비스는 기능적으로는 대단치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인명 보호 관점에서 그 가치는 누구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외에도 데이터로 관리할 수 있는 리스크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기업 부문에서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대부분 자체 보유 중인 내부 정보를 활용하여 진행된다. 이 내용들이 기업 비밀과 관련되다 보니, 기업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모두 ‘조용한 변신’이라 할만하다. 조직 구조 개편, 신규 사업 준비, 연구 개발과정 이후의 기업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사실 당사자들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변신>을 집필한 카프카는 결핵으로 사망했다. 생전 그는 자신을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처럼 여겼을까? 그가 화이트칼라 보험회사 직원이었으며, 20세기 초반 유대인 차별이—나치의 끔찍한 만행까지는 아니지만—유럽 내에 상당한 정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 딱딱해져 버린 등에 사과가 박힌 채로, 가족들에게 버림받아 비참하게 죽어간다. 카프카가 보았던 근대인의 매트릭스에는 출구가 없었다. 카프카의 문학적 성취마저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가까운 친구에 의해서 발굴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위기에 처한 인류의 등에 박힌 사과와도 같다. 이것을 어떻게 뽑아낼 수 있을까? 존폐의 위기에 가로놓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날아드는 사과를 막아내고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어지는 글에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으로, 데이터 관리와 활용을 적용한 기업 사례를 더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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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 사진 : 프라하 시내에 있는 프란츠 카프카 동상 / flickr
*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는 2조 달러, 우리 돈으로 2,500조에 달하는 긴급자금 조달에 합의했고, 중국은 이미 한 달도 전에 금리인하로 50조 원 가량을, 그 뒤로도 계속 돈을 풀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은행이 시중 금융사에 전례 없는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시작했다.
* 정부는 자가격리 중이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곧바로 관련 기관에 접촉할 수 있도록, 10분 단위의 실시간 연락망을 구축했다.
* 서구권이 미적거린 까닭 가운데 하나는 추적검사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생활 침해 우려였다.
*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자발적으로 제작된 코로나 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