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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멘탈 Aug 17. 2023

렌트비 대신 대출비

난 남의 모기지 대신 갚아주면서 남의 재산 불려주는 거 안 하련다

결국 우리는 그 집을 샀다. 처음으로 봤던 그 집을.

아주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네고를 거친 후에 사내고야 말았다.


오십오만 불이라던 그 집은 다른 구매자와 경쟁이 붙어 가격이 점점 올라갔다. 자고 일어나면 오천 불씩 올라가 있었다. 아침마다 오빠한테 전화를 해서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실망하는 한 주가 이어졌다. 우리는 60만 불 이상은 안돼하면서 다짐을 했다.


막판에는 원래 주인의 여자친구가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더 올라갔다. 우리의 원래 버짓은 이미 산으로 간지 오래였고 60만 불이 마지막이라는 다짐도 있어서 포기를 하려는데 친정 엄마랑 아버지가 집이 좋으면 밀어붙이는 거라며 등을 떠밀었다.


이틀의 한번 꼴로 다른 시간대에 그 아파트에 가서 우리는 그냥 서서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아무리 봐도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믿을만한 건 우리의 gut feeling (직감)뿐.


거의 포기할 뻔했을 때 오빠가 마술을 부렸고 우리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실상은 카드 돌려 막기 신공을 동반한 영끌 마이너스 상태였지만 그때는 결국 해냈다는 게 더 중요했다.


2013년 10월 4일.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오빠도 나도 ‘내 집’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첫 아파트 도면

지금 돌아보면 무식해서 용감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아는 게 많았다면 오히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결정을 못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단지 ‘렌트비 내느니 대출비’라는 생각에 직진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오히려 진화했다. 전략 없이 무작정하는 렌트는 남의 모기지를 대신 갚아주면서 남의 재산 불려주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에서야 우리가 봤던 그 수십 개의 집들 중에 하우스 하나가 눈에 밟힌다. 그 집은 그다지 우리가 선호하지 않는 지역(Banksia)에 있었지만 기차역에서는 매우 가까웠는데 시티까지 여덟 정거장 정도 됐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주택가 동네고 무엇보다 '물'문제를 동반한 다른 관리 문제가 분명 있을 거 같아 그 집은 아웃됐다. 만약 우리가 그걸 감수하고 그 집을 샀다면 지금 집 값이 훨씬 많이 올랐을 걸 이제는 아니까 살짝 아쉽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아파트에 살면서 무엇보다 편했고 출퇴근 시간을 많이 아꼈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넷 다 안 아프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리고 또 같이 성장했고 지역에 대한 우리만의 확고한 안목이 생겼다. 그렇게 무리해서 우리의 첫 집을 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도 시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인들이 많은 어느 서쪽 동네에 살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아파트에 엄청난 애정과 집착이 있다. '첫 내 집'이라는 소중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는 Alexandria라는 지역에 있는데 우리가 샀을 적만 하더라도 아시안은 거의 없는 지역이었다. 옛날에는 웨어하우스가 많은 지역으로 그다지 인기가 많지 않았는데 도시재생사업 및 개발을 한다고 하여 막 알려지기 시작했었다.


우리 집은 그린스퀘어 기차역까지 5분 컷이 가능한 초역세권에 있었고 Central 역(시드니의 ‘서울역’)까지 한 정거장, 국제공항까지는 세 정거장이었다. 시티로 출퇴근하는 오빠와 나에게는 너무 편리했다. 주변은 카페가 많은 걸로 유명한 동네였고 바닷가도 20분이면 갈 수 있었다. 주변이 점점 더 발달하고 있었고 우리가 사는 동안에도 동네가 더 많이 살기 좋아져서 난 그 동네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내 차례였다. 오빠가 나를 오빠의 하우스 철학에 세뇌시킨 것처럼 나도 오빠를 세뇌했다.


“난 City of Sydney 아니면 이사 안 갈 거야. 다음 집도 City of Sydney 여야만 해”


우리는 마이너스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때는 City of Sydney (굳이 말하자면 시드니 구*) 안에 하우스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먼 산 같은, 그림의 떡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난 오빠가 '하우스'의 꿈을 놓을 줄 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City of Sydney 지역에 포함되어 있는 Suburbs를 보여주는 지도


오빠는 어느 날인가부터 매일 부동산 웹사이트를 보며 하우스 시세를 익히기 시작했고 나도 덩달아 같이 보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오빠는 이미 준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도 오빠한테 스며들어 매일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담 없이 봤지만 그 평온함은 얼마 가지 않았다. 우리는 머지않아 FOMO 상태가 되었다. 코로나가 우리를 덮쳤기 때문이다.


FOMO = Fear of Missing Out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6444573&cid=40942&categoryId=31531




*일반적으로 '시드니'라고 하면 전체 도시를 말한다. 그 '시드니'는 Metropolitan Sydney과 Greater Sydney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Metropolitan Sydney는 시드니 CBD(시티 도심부)에서 가까운 지역들이고 Greater Sydney는 시티에서 떨어진 더 큰 지역들이다. 그 안에서 LGA(Local Government Area)이라는 지방정부지역이 또 나뉜다. 그리고 더 나아가 LGA 안에 Suburbs, 사전적 의미로는 교외, 나는 '동네'라고 부르는 지역들이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시, 구, 동]을  [시드니 시, LGA 구, Suburb 동]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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